| 한자 | 尹集 |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 지역 | 요령성 |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 성격 | 문신(文臣) |
|---|---|
| 성별 | 남(男) |
| 본관 | 남원(南原) |
| 대표관직 | 홍문관 부교리 |
| 출생 시기/일시 | 1606년(선조 39) |
| 활동 시기/일시 | 1631년(인조 9) |
| 활동 시기/일시 | 632년(인조 10) |
| 활동 시기/일시 | 1635년(인조 13) |
| 활동 시기/일시 | 1636년(인조 14) |
| 몰년 시기/일시 | 1637년(인조 15) |
| 추모 시기/일시 | 1653년(효종 4) |
| 추모 시기/일시 | 1686년(숙종 12) |
| 추모 시기/일시 | 1705년(숙종 31) |
| 묘소|단소 | 충청도 부여군 내산면 온혜리 산 19-50번지 |
| 사당|배향지 |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
| 사당|배향지 | 충청도 부여군 구룡면 |
| 사당|배향지 | 경상도 영주시 상망동 |
| 사당|배향지 | 경상도 고령군 운수면 운산리 |
| 사당|배향지 | 인천시 강화군 선원면 선행리 |
조선 후기 심양(瀋陽)에 인질로 잡혀갔다가 처형된 삼학사(三學士) 중 한 명.
윤집은 1631년(인조 9) 문과에 급제하였고, 1632년(인조 10) 세자 시강원 설서에 제수되었다. 이후 1635년(인조 13) 홍문관수찬을 비롯해 사간원정언, 사간원헌납, 이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홍문관 부교리에 재직할 때인 1636년(인조 14) 11월에는 청나라와의 화의(和議)를 주장한 최명길(崔鳴吉)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린 바 있고, 같은 해 12월 22일 남한 산성에서 항전할 당시에는 화의를 주장한 사람을 참수하자는 논의를 주도하였다.
1637년(인조 15) 병자호란이 종식된 후 오달제(吳達濟), 홍익한(洪翼漢) 등과 함께 척화신으로 지목되어 청나라 심양에 인질로 잡혀갔다. 심양에서 청나라 장수 용골대가 황제의 뜻이라며 처자를 데리고 심양에 살라고 하는 등 협박과 회유를 하였다. 윤집 등은 이를 거부하다가 결국 처형되었다.
윤집의 묘소는 충청남도 부여군 내산면 온혜리 산 19-50번지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