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가촌 유형

한자 尹家村 類型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요령성 대련시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고조선
정의

초기 철기 시대에 요령성 대련시와 장해현 일대에 형성되어 있던 토착계 문화.

개설

윤가촌 유형은 요동 반도 남단 지역의 후기 청동기 문화인 강상 유형(崗上類型)이 기원전 4세기 말~3세기 초 초기 철기 문화로 전환된 것이다. 윤가촌 유형은 토착적인 유물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면서 연(燕)나라 유물이 복합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다.

묘제로는 요동 반도 남부의 전통적인 묘제는 아니지만 십이대영자 문화(十二臺營子文化) 정가와자 유형(鄭家窪子類型) 때 이 일대에 요서 양식의 청동기와 함께 침투된 석곽묘와 북방식 토광묘가 이 지역에서 청동기 시대 말기까지 강한 지역성을 보이며 축조되던 적석묘제를 대체하여 새로운 토착 전통을 이루게 되었고, 이와 함께 윤가촌식(尹家村式) 중세형 동검과 그 부속구, 그리고 나팔좌두(喇叭座豆)· 이중구연 천복발(淺腹鉢) 등의 토기가 계속적으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연나라 유물 요소 또한 그에 못지않게 복합되어 있는데, 반수병동검(盤首柄銅劍)·도씨검(桃氏劍)·편경검(扁莖劍) 등의 전국계(戰國系) 동검, 고병두(高柄豆), 점토질의 회색· 회갈색조의 토기, 명도전(明刀錢) 등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윤가촌 유형과 같은 시간성을 보이고 있는 순수 연나라 취락과 고분군이 같은 공간 안에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연나라가 요동 남부에 진출한 이후 이 일대에 토착하고 있던 집단의 유적군으로 생각된다.

주요 유적으로는 대련시 윤가촌 12호 석곽묘·윤가촌 서남하(西南河) 석곽묘·윤가촌 서남대하(西南大河) 북(北) 토광묘, 보란점시(普蘭店市) 쾌마창(快馬廠) 매납 유구, 장해현(長海縣) 서가구(徐家溝) 석곽묘·진가구(陳家溝) 토광묘 등이 있다.

분포상의 특징

윤가촌 유형과 관련하여 특기할 사항은 사가가 유형(謝家街類型)과 임가보 유형(任家堡類型) 등과는 달리 윤가촌 유형이 미안구 유형(眉眼溝類型), 즉 연나라 유적군과 같은 지역 내에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노철산(老鐵山)과 장군산(將軍山)이 있는 요동 반도 최남단의 경우 노철산과 장군산 서쪽의 동서 너비 2.5㎞, 남북 너비 5㎞의 범위 내에 윤가촌 12호 석곽묘, 조가촌(刁家村) 토광묘, 대령저(大嶺底) 중세형 동검 출토지 등의 윤가촌 유형 관련 유적과 함께 불과 저산 구릉 3~4개 정도의 거리, 즉 1㎞ 안팎의 간격을 두고 목양성(牧羊城) 취락지가 위치하고 있고, 조가촌의 경우에는 중세형 동검 출토 지점으로부터 언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국식(戰國式) 동검이 출토되었다.

또한 고고학적 정보가 충분치는 않지만 목양성과 인접하고 있는 우가촌(于家村)과 관둔자(官屯子) 등지에서는 묘역의 최초 조성 시점이 연나라까지 올라갈 수 있는 옹관묘가 발견되었고, 노철산 너머 동쪽의 백람자(柏嵐子)에서는 연나라 토광묘 출토물일 가능성도 있는 전국계 동검이 출토되었다. 이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지점이기는 하지만 동북쪽 15㎞에는 명도전 400매가 출토된 장가촌(蔣家村) 화폐 매납 유구가 있다. 이러한 유적 분포 정황을 고려할 때, 윤가촌 유형은 연나라의 군사 및 행정적 통치 영역 내에 포괄되어 있던 요동 남부 토착 집단의 유적군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오강원, 『비파형 동검 문화와 요령 지역의 청동기 문화』(청계, 1996)
  • 金貞培, 「韓民族의 起源과 國家 形成의 諸問題」(『국사관 논총』 1, 국사편찬위원회, 1989)
  • 오강원, 「遼寧~西北韓 地域 中細形 銅劍에 관한 硏究」(『淸溪史學』16, 한국학중앙연구원, 2002)
  • 오강원, 「紀元前 3世紀 遼寧 地域의 燕나라 遺物 共伴 遺蹟의 諸 類型과 燕文化와의 關係」(『한국 상고사 학보』71, 한국 상고사 학회, 2011)
  • 오강원, 「遼寧 地域의 靑銅器·初期 鐵器 時代 複合 社會의 形成과 社會 變動」(『先史와 古代』 38, 한국 고대 학회, 2013)
  • 오강원, 「청동기~철기시대 요령·서북한 지역 물질 문화의 전개와 고조선」(『동양학』53,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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