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亮甲山 土壙墓 |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 유형 | 유적/고분 |
| 지역 | 요령성 요양시 요양현 하란진 양갑촌 |
| 시대 | 고대/초기 국가 시대/고조선 |
| 성격 | 토광묘 |
|---|---|
| 양식 | 토광묘 |
| 크기 | 160cm[길이]|40cm[너비]|130cm[두께](7호 무덤구덩이) |
| 조성 시기/일시 | 고조선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55년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55년 |
| 소재지 | 요령성 요양시 요양현 하란진 양갑촌 |
요령성 요양시(遼陽市) 요양현(遼陽自) 하란진 양갑촌에 있는 청동기 시대 말기[고조선 시대]의 토광묘군.
양갑산 토광묘는 요령성 요양시 요양현 양갑촌 강변 충적 대지에 있는 청동기 시대 말기의 토광묘군[6기]이다. 십이대영자 문화(十二臺營子文化) 정가와자 유형(鄭家窪子類型)의 후기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양갑산 토광묘는 요령성 요양시 요양현 하란진 양갑촌탕하(湯河) 서안의 충적 대지에 위치하고 있다.
양갑산 토광묘는 1955년 관개 수로 공사를 하다 토광묘군을 파괴하게 되자 요령성 박물관(遼寧省博物館)이 수습 조사하였다.
양갑산 토광묘는 채집된 유물과 단층에서 확인되는 유구 사이의 중첩 관계를 고려하여 볼 때, 양갑산 유적은 위 문화층[철기 시대, 생활 유적]과 아래 문화층[청동기 시대 말기~초기 철기 시대, 토광묘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토광묘군이 위치하고 있는 것은 아래 문화층이다. 7호 토광묘는 무덤 구덩이의 규모가 길이 1.6m·너비 0.4m·깊이 1.3m이다.
양갑산 토광묘는 1호 토광묘에서 중세형 동검 1점·정가와자형호 1점, 2호 토광묘에서 중세형 동검 1점·우각형 파수부관 4점, 3호 토광묘에서 중세형 동검 1점, 5호 토광묘에서 정가와자형호 1점·우각형 파수부관 1점·석판 2점, 6호 토광묘에서 우각형 파수부관 2점, 7호 토광묘에서 정가와자형호 1점·우각형 파수부관 1점이 수습되었다.
양갑산 토광묘는 관개 수로 건설로 현재 유적이 모두 파괴된 상태이다.
양갑산 토광묘군은 십이대영자 문화 정가와자 유형 후기를 대표하는 유적 가운데 하나이다. 태자하 중류역의 요양현 일대는 원래 요동 북부의 후기 청동기 문화인 이도하자 유형(二道河子類型)의 중심 지역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기원전 6세기 무렵 심양 일대에 십이대영자 문화 정가와자 유형의 중심이 형성되면서 점차 물질문화가 변동되기 시작해 늦어도 기원전 5세기 무렵에는 요양시(遼陽市)·등탑시(燈塔市)·안산시(鞍山市)·영구시(營口市)·해성시(海城市) 일대가 정가와자 유형의 권역에 포괄되기에 이른다.
양갑산 토광묘군은 직인식 중세형 동검과 정가와자 형호으로 보아 기원전 4세기 무렵으로 편년되는데, 이 유적은 태자하 중류역의 물질 문화가 같은 시기 어떻게 변모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된다.
한편 양갑산 토광묘군을 포함하여 십이대영자 정가와자 유형을 요서 지역의 십이대영자 문화 남동구 유형(南洞溝類型)을 기반으로 형성되어 있던 요서 지역 고조선 연맹체(古朝鮮聯盟體)와 병존하고 있던 요동 지역 고조선 연맹체로 보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