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鏵銅礦 支石墓 |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 유형 | 유적/고분 |
| 지역 | 요령성 대련시 와방점시 이관진 화동촌 |
| 시대 | 고대/초기 국가 시대/고조선 |
| 성격 | 지석묘 |
|---|---|
| 양식 | 탁자식 지석묘 |
| 크기 | 238cm[길이]|238cm[너비]|25cm[두께](상석) |
| 조성 시기/일시 | 고조선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39년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39년 |
| 소재지 | 요령 대련시 와방점시 이관진 화동촌 |
요령성(遼寧省) 대련시(大連市) 와방점시(瓦房店市) 이관진(李官鎭) 화동촌(鏵銅村)에 있던 청동기 시대[고조선 시대]의 고인돌.
화동광 지석묘는 요령성 대련시 와방점시 화동촌의 북산 사면 대지에 있던 탁자식 지석묘군이다. 중국 동북 지역의 지석묘 가운데 최초로 공식적인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고, 발굴 조사에 의해 지석묘 조성 당시의 부장 유물이 출토된 지석묘이다.
화동광 지석묘는 요령성 대련시 와방점시 이관진 화동촌 북산(北山) 7부 능선 구릉 단부 정상의 대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화동광 지석묘는 1939년 일본인 삼택준성(三宅俊成)이 요동 지역의 지석묘의 구조와 출토 유물의 성격 등을 밝히기 위해 발굴 조사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토기와 석기가 출토되었다.
화동광 지석묘는 정방형 상석 하부에 정방형 묘실이 있는 대형 탁자식 지석묘(卓子式支石墓)이다. 1939년의 조사에 따르면, 구 지표 0.5m 아래까지 수직으로 굴광하고 바닥면을 고른 다음 굴광 4개 벽면에 잘 다듬은 판상석을 세우고 그 위에 역시 잘 다듬어 물매질까지 해 놓은 판상석재의 상석을 올려놓은 것으로 되어 있다.
지석묘의 묘실은 특이하게 역시계 방향으로 벽석을 잇닿게 하여‘ㅁ’자형으로 조립하였다. 지석묘는 묘 문석과 묘실 뒤 막음돌의 형태·크기·가공 상태 등에서 전혀 구별이 없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상석의 크기는 길이 2.38m, 너비 2.38m, 두께 0.25m이다. 묘실은 길이 1.4m[안측 기준], 높이 1.38m이다.
지석묘는 이외에도 몇 기가 더 있었지만, 보고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파괴되어 자세한 정황을 알 수 없다.
화동광 지석묘의 묘실 내 바닥석에서는 광견호(廣肩壺) 1점, 쌍방형(雙房型) 심발형(深鉢形) 토기 1점, 공귀리식(公貴里式) 환상(環狀) 석기 1점과 인골 조각이 출토되었다.
화동광 지석묘는 1950년대 광산촌이 지석묘가 있는 구릉 위 대지까지 확대되면서 완전히 파괴되었다. 삼택준성이 발굴 조사한 것 외에도 구릉 아래쪽에 몇 기의 탁자식 지석묘가 더 있었으나 이 또한 모두 파괴되어 현존하지 않는다.
화동광 지석묘는 중국 동북 지역의 지석묘 가운데 최초로 공식적인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부장 유물이 출토된 지석묘이다. 묘실 내 출토 유물인 광견호와 쌍방형 심발형 토기는 보란점시(普蘭店市) 쌍방(雙房) 지석묘군을 표지로 하는 쌍방 유형(雙房類型) 쌍방 단계의 지석묘보다 한 단계 앞선 시간성을 보이고 있다. 또한 동일 단계 내에서도 가장 이른 시간성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쌍방 유형 발생기의 지석묘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이 시기를 쌍방 유형 화동광 단계로 명명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화동광 지석묘를 비롯한 쌍방 유형의 지석묘 유적을 고조선의 유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