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尹家村 12號 石槨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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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 유형 | 유적/고분 |
| 지역 | 요령성 대련시 여순구구 철산진 윤가촌 |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
| 성격 | 석곽묘|적석목관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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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식 | 석곽묘|적석목관묘 |
| 크기 | 315cm[길이]|110cm[너비]|160cm[깊이](무덤구덩이) |
| 조성 시기/일시 | 고조선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64년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64년 |
| 소재지 | 대련시 여순구구 철산진 윤가촌 |
요령성(遼寧省) 대련시(大連市) 여순구구(旅順口區) 철산진(鐵山鎭) 윤가촌(尹家村)에 있는 초기 철기 시대[고조선 시대]의 석곽묘(石槨墓) 또는 적석 목관묘(積石木槨墓).
윤가촌 12호 석곽묘는 요령성 윤가촌의 하천변 구릉 완사면지에 있는 초기 철기 시대의 석곽묘 또는 적석 목관묘이다. 전국연(戰國燕)이 기원전 3세기 초 요동 반도 남단 일대를 점령하면서 청동기 시대의 강상 유형(崗上類型) 집단이 전국연 문화와 상호 작용하는 가운데 요동 반도 남단을 중심으로 요동 남부의 일부 지역에 형성된 윤가촌 유형(尹家村類型)의 표지 유적이다.
윤가촌 12호 석곽묘는 요령성 대련시 여순구구 철산진 윤가촌 서남쪽의 하천변 구릉 완사면지에 위치하고 있다. 일본이 중국 동북 지역을 점령하였을 때 일본인 고고 학자들에 의해 조사된 유가탄(劉家疃) 석곽묘와 사실상 같은 지점이다.
윤가촌 12호 석곽묘는 1964년 북한과 중국이 공동으로 조중 공동 고고학 발굴대를 조직하여 발굴 조사하였다.
윤가촌 12호 석곽묘 유적은 위층과 아래층 두 개의 문화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층은 목관묘·목곽묘·옹관묘(甕棺墓)·한식 회색 타날문(打捺文) 토기·철경 동촉(銅鏃) 등이 조사된 것으로 보아 서한 문화층(西漢文化層)임이 분명하다.
아래층은 1기층[아래층]과 2기층[위층]으로 세분되는데, 이 가운데 윤가촌 12호 석곽묘는 2기층에 위치하고 있다. 무덤의 축조는 길이 3.15m·너비 1.1m·깊이 1.6m의 무덤구덩이 안에 판석과 막돌을 한 벌 돌려 벽석을 축조한 다음, 그 안에 목관을 배치하고, 이어 목관의 상부에 막돌을 흙과 함께 덮는 방식으로 하여 완성하였다.
윤가촌 12호 석곽묘에서는 중세형 동검 1점, 환상 석기 1점, 회색 니질(泥質)의 굽접시 1점, 갈색 사질의 고병두 2점, 단경호(短頸壺) 1점, 쌍방형 심발형 토기 1점 등이 출토되었다.
윤가촌 12호 석곽묘 유적의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윤가촌 12호 석곽묘는 묘제에서는 십이대영자(十二臺營子) 문화 남동구(南洞溝) 유형 또는 정가와자(鄭家窪子) 유형의 적석 목관묘[퇴화 형식의 석곽묘], 토기에서는 전국연 토기와 전국연 토기를 모방하여 현지에서 제작한 토기 및 요동 남부 지역 토착 토기, 청동기에서는 십이대영자 문화 정가와자 유형 후기의 중세형 동검의 영향을 받은 윤가촌식 중세형 동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물질 양상은 요동 반도 남단의 후기 청동기 문화인 강상 유형이 기원전 6~4세기 정가와자 유형의 영향을 받아 토착적인 묘제인 적석묘에 정가와자 양식의 청동기 등을 수용하다가, 전국연이 이 지역을 점령하기 직전 요서 양식의 묘제로 전환되었고, 그 직후 전국연의 지역 거점이 대련시 관내에 설치되자 전국연 문화의 유물 요소가 복합하게 되었음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기원전 3세기 윤가촌 12호 석곽묘와 같은 요동 남부 지역의 유적군을 윤가촌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윤가촌 12호 석곽묘를 비롯한 윤가촌 유형의 유적군을 고조선 유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