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錦西 寺兒堡 土壙墓 |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 유형 | 유적/고분 |
| 지역 | 요령성 |
| 시대 | 고대/초기 국가 시대/고조선 |
| 성격 | 고분 |
|---|---|
| 양식 | 토광묘 |
| 조성 시기/일시 | 고조선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56년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56년 |
| 소재지 | 요령성 금서시 사아보향 북로변둔 |
요령성 금서시(錦西市) 사아보향(寺兒堡鄕) 북로변둔(北路邊屯에 있는 청동기 시대[고조선 시대]의 토광묘.
금서 사아보 토광묘는 요령성 금서시 북로변둔의 완사면 충적대지 침식 단애부에 위치하고 있는 토광묘이다. 소릉하(小凌河) 유역 십이대영자 문화(十二臺營子文化)의 전개와 관련된 주요 유적 가운데 하나이다.
금서 사아보 토광묘는 요령성 금서시 북로변둔의 완사면 충적대지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대지에는 빗물의 침식으로 폭 15m, 깊이 2~3m 가량의 골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유물이 출토된 지점은 골의 서측 단애부 지표 아래 1.7m 지점이다.
금서 사아보 토광묘는 1956년 금서현 북로변둔의 주민이 마을 부근에서 흙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발견 되었다. 이곳에서 비파형 동검 등이 출토되자 금서현 문물 관리소가 현장을 확인하고 관련 유물을 회수 하였다.
금서 사아보 토광묘는 1956년 발견 당시 단애부에서는 대략 두 개의 문화 층위가 확인되었다. 위쪽 문화층은 흑갈색토층, 중세 시대층, 두께 0.7m이며 아래쪽 문화층은 사질 황토층, 청동기 문화층, 두께 1.2m이다. 유물이 출토된 문화층은 아래쪽 문화층 중에서도 바닥 부분에 가까운 지점이다. 토광묘의 구조는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금서 사아보 토광묘에서는 비파형 동검 1점, 청동제 검 손잡이 1점, 검병 두식 1점이 수습되었다.
금서 사아보 토광묘는 자연적인 침식과 개간 등으로 지형이 계속 변모되어 유적의 보존 정황이 좋지 않다.
금서 사아보 토광묘가 위치한 지역은 십이대영자 문화권 가운데 소릉하 유역, 특히 옛 금서현 일대는 유적 조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소릉하 유역 물질 문화의 전개가 시기 별로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은데, 사아보 토광묘는 오금당(烏金塘) 토광묘 이후 시기 이 일대 물질 문화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사례에 해당된다.
한편 사아보 토광묘 등 소릉하 유역의 십이대영자 문화 유적을 고조선 유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