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高麗叢 |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 유형 | 지명/고지명 |
| 지역 | 요령성 |
| 시대 | 조선/조선 |
| 성격 | 고지명 |
|---|---|
| 관련문헌 | 「연계기정(燕薊紀程)」|『무오연행록(戊午燕行錄)』|『계산기정(薊山紀程)』 |
조선 후기 연경(燕京)으로 가는 조선 사신 일행이 거쳐 가던 요동에 있던 지명의 하나.
고려총은 고려 말 이후 고려와 조선에서 이주해간 사람들이 거주하던 곳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에는 베이징으로 가는 사신 일행이 거쳐 가던 곳 중 하나로, 이곳을 거치면서 옛 조선의 영토를 회상하기도 하였다.
1828년(순조 28) 사은 겸 동지사의 일원으로 연경에 다녀온 박사호(朴思浩)는 「연계 기정(燕薊紀程)」에서 고려총의 풍경에 대해 “다닥다닥 벌여 있는 무덤 앞의 비석, 노석(爐石)을 보면 이것들이 우리나라 사람의 제도가 분명하다”고 하면서 요동은 조선의 옛 땅임을 회상하였다.
다만 조선 후기 고려총은 인가가 별로 없었던 듯 촌락이 보잘 것 없다는 기록이 확인되기도 한다. 『계산 기정(薊山紀程)』을 기록한 찬자는 다음과 같이 시로서 감상평을 남기기도 하였다.
포로들 견양의 우리 들어가기 부끄러워 / 南冠羞入犬羊屯
딴 고장에 머물러 한 마을이 되었네 / 淹滯殊方自一村
죽어서 동쪽 사람 오가는 길에 묻혀서 / 死葬東人來去路
해마다 외로운 혼 조문해 주길 기다리네 / 年年猶待弔孤魂
중국요령성 일대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