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高句麗 古墳 |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 지역 | 길림성 요령성 |
| 시대 | 고대/초기 국가 시대/고조선 |
길림성(吉林省)과 요령성(遼寧省), 한반도 일대에 분포하는 고구려 시대 고분.
고구려고분으로는 적석총(積石塚)과 봉토분(封土墳), 기단 봉토분(基壇封土墳), 벽화분(壁畵墳)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적석총은 돌로 분구를 쌓았으며, 봉토분은 흙을 쌓아 분구를 만들고, 기단 봉토분은 돌로 기단을 만든 후 흙을 쌓아 분구를 완성한 적석총과 봉토분의 과도기 형태이다. 벽화는 봉토분에서 주로 확인되지만, 적석총에서도 확인된다.
적석총은 지상에 돌을 깔고 주검을 안치한 후 그 위에 다시 돌을 덮어 매장을 마감한 무덤으로 지상에 커다란 돌무지를 갖고 있다. 돌무지의 형태가 규모와 축조 방법 및 석재의 가공 정도에 따라 구분된다는 점에서 적석총은 분구 지향적인 무덤이라 할 수 있다. 봉토분은 분구 규모에 차이가 있으나, 규모에 따른 분형이나 축조 기술에서의 별다른 차이는 없다. 벽화분은 주검이 안치된 석실 내부에 생활의 여러 장면과 해와 달, 연꽃이나 왕(王)자 도안, 사신 등을 그려 장식한 것으로, 묘실의 구조나 축조 방법, 평면 형태 등이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러한 벽화분은 묘실 지향적인 무덤이라고 할 수 있다.
6세기 이후의 무덤에서는 부장품이 드물어서 박장(薄葬)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4·5세기대의 고분에서는 다양한 부장품이 확인된다. 특히 식생활 전반을 보여주는 조리에서부터 식음기에 이르는 금속 용기와 토기, 황색이나 갈색 유약을 바른 그릇, 말 타는데 필요한 도구들과 금·금은·금동제의 관 및 허리띠·귀걸이 등의 장신구과 신발, 중국제 청자 등이 부장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부장품의 조합은 적석총과 봉토분에서 모두에서 확인된다.
-적석총
적석총은 지상의 분구 중에 매장부가 있는 무덤으로 지하 매장부를 가진 중국이나 한반도 다른 지역의 무덤과 구별된다. 기원전 3~2세기경의 천산 산맥(千山山脈) 이동 지역에서부터 집안(集安)에 이르는 지역에 분포하는 돌무덤에서 발전한 적석총은 고구려 원주민의 묘제이면서 중국과 구별되는 고구려 고유의 묘제이다.
분구 축조 방식과 드러난 형태에 따라 무기단(無基壇), 기단, 계단 적석총(階段積石塚)으로 분류하거나, 주검이 안치된 매장부와 매장방식을 기준으로 석광[곽]적석총(石壙積石塚), 광실 적석총(壙室積石塚), 석실 적석총(石室積石塚)으로 분류된다. 분구와 매장부 각각의 등장 시점에 따른 선후 관계를 갖고 있어서 무기단 석광[곽]적석총에서 기단석광[곽]적석총으로 변화하며 3세기 후반경이 되면 횡혈식(橫穴式) 장법을 받아들여 석광[곽]과 광실의 계단 적석총이 병존한다. 천장까지 잘 쌓은 횡혈식 장법의 석실 구조가 등장하면서 4세기경이 되면 계단 석실 적석총이 유행하기 시작한다. 특히 4·5세기의 최상위 신분의 무덤은 초대형 계단석실적석총이며, 6세기에 들어서면 적석총의 축조는 차츰 줄어들어서 압록강 하류의 본지류역 일부지역에서만 조성된다.
-봉토분과 벽화분
봉토분은 지상이나 반지하에 석실을 만들고 흙으로 쌓고 덮어서 분구를 만든 무덤으로, 적석총에 이은 고구려 후기 묘제이다. 분구는 방형 평면을 가진 방대형이 다수를 점하며, 봉토분을 대표하는 것은 묘실 내부에 그림을 그린 벽화분이다.
벽화분은 석실 내부의 벽과 천장에 그림을 그려 장식한 무덤으로, 매장부 구조는 복잡하여 단칸 구조와 여러 칸 구조가 있다. 천장은 궁륭상이나 여러 형태의 고임식으로 높이 쌓아 올려서 무덤 내부 공간이 확대되었고, 확대된 천장에는 천상의 하늘 세계를 그려 넣어 현실 세계가 사후 세계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는 계세 관념이 반영되어 있다.
벽면의 벽화 내용에 따라 생활 풍속도, 장식 도안, 사신도 벽화분으로 나뉘며, 초기에 중국 묘실 벽화의 영향을 받아 묘실 벽면과 천장에 백회를 바른 후 생활 풍속도와 초상화가 주가 되며, 5세기 중엽경 왕(王)자 도안이나 둥근 무늬, 연꽃 무늬, 거북 등 무늬 등의 장식 도안이 더해지다가, 6세기경이 되면 잘 다듬은 벽면에 직접 사신도를 그린 벽화분으로 변화한다. 매장부는 복잡한 구조에서 단순, 간단한 구조로 변화하여 6세기가 되면 방형 현실의 중앙연도, 평행 고임식 천장의 단칸 구조 무덤이 중심이 된다.
특히 6세기에 들어서면 적석총을 대신하여 사신도 벽화분이 최상위 무덤이 되면, 사신도 벽화분을 대표하는 강서대묘나 통구 오회분의 4, 5호분의 천장에는 황룡을 그려 넣어서 고구려가 천하의 중심이라는 당시의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사신도 벽화분은 중국 묘실 벽화 전통과 구별되는 고구려에서 재창안된 벽화분이라고 할 수 있다.
-고분의 변천
고구려고분의 변천은 분구와 매장 방식, 매장부 구조에 따라 세 단계나 나눌 수 있다. 첫 단계는 중국과 구별되는 고구려묘제의 독자성이 발현, 유지되는 기원전 3세기부터 3세기 대까지의 시기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기단에서 기단, 계단으로 외형상의 분화와 함께 평면 형태에서 정형성을 띠어간다.
둘째 단계는 새로운 무덤 형식을 받아들여 기존의 적석총과 융합되어 가는 4·5세기대로, 당시 동아시아에서 유행하였던 합장을 받아들여 석실과 봉토분, 묘실 벽화라는 신 요소가 기존의 적석총과 공존, 결합하면서 여러 형식의 무덤이 병존하며, 공간적으로도 첫 단계보다 무덤의 분포범위가 확대되어서 무덤을 통하여 고구려 영역 확대 과정을 상정할 수 있다. 동시에 규모나 묘역 시설 등에서 월등한 초대형 적석총은 강력한 왕의 존재를 시사한다.
셋째 단계는 6세기부터 석실 봉토분이 중심이 되는 시기로, 전 시기에 받아들여진 새로운 요소가 고구려묘제로 정착되어서 고구려 전 영역에서 석실 봉토분이 축조됨으로써 묘제가 형식적 균일함을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