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老爺廟 土壙墓 |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 유형 | 유적/고분 |
| 지역 | 요령성 조양시 객라심좌익몽고족자치현 노야묘향 과목수영자촌 |
| 시대 | 고대/초기 국가 시대/고조선 |
| 성격 | 토광묘 |
|---|---|
| 양식 | 토광묘 |
| 크기 | 미상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3년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3년 |
| 소재지 | 요령성 조양시 객라심좌익몽고족자치현 노야묘향 과목수영자촌 |
요령성(遼寧省) 조양시(朝陽市) 객라심좌익몽고족자치현(喀喇沁左翼蒙古族自治縣) 노야묘향(老爺廟鄕) 과목수영자촌(果木樹營子村)에 있는 청동기 시대[고조선 시대]의 토광묘.
노야자 토광묘는 요령성 조양시 객라심좌익몽고족자치현 과목수영자촌에 있는 토광묘이다. 십이대영자 문화(十二臺營子文化) 남동구 유형(南洞溝類型)의 주요 유적 가운데 하나이다.
노야자 토광묘는 요령성 조양시 객라심좌익몽고족자치현 노야묘향 과목수영자촌의 구릉으로부터 평지로 뻗은 완사면 사이의 저지에 위치하고 있다.
노야자 토광묘는 1993년 과목수영자촌의 주민이 밭에 물을 대다가 유구의 일부를 깨트려 객라심좌익몽고족자치현 문물 관리소 등이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중세형 동검 등의 유물이 출토 되었다.
조사자가 노야자 토광묘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유구의 대부분이 파괴되고 유물의 일부가 도굴된 상태였다. 다만 주민의 증언을 토대로 1인을 두향을 동쪽으로 하여 앙신직지(仰身直肢)로 묻은 토광묘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묘구덩이 안에 목관곽이 배치되어 있었는지, 그리고 무덤의 구조 형식이 어떠하였는지는 미상이다.
노야자 토광묘에서는 중세형 동검 1점, 청동제 검손잡이의 부속품 2점, 청동 고리 1점, 원주형 동식(圓柱形銅飾) 1점, 곡봉형 대구(曲棒形帶鉤) 2점, 청동 꺽창 1점, 오목 밑 청동 방울 2점, 우각형 파수 부관(牛角形把手附罐) 1점, 견쌍이호(肩雙耳壺) 1점 등이 출토되었다.
노야자 토광묘는 수습 조사 후 유적에 대한 보호 조치나 추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유적의 보존 상태는 양호하지 않다.
노야자 토광묘는 십이대영자(十二臺營子) 문화 남동구(南洞溝) 유형의 주요 유적 가운데 하나이다. 남동구 석곽묘와 함께 이 유적의 조사를 통해 십이대영자 문화가 기원전 6~4세기 하북성(河北省) 북부의 동남구(東南溝)~옥황묘 문화(玉皇廟文化) 옥황묘 유형(玉皇廟類型)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후기 북방계 유물 요소를 수용하였고, 이러한 교류 과정에 십이대영자 문화의 중심이 조양(朝陽) 일대에서 요령성 서부의 객라심좌익몽고족자치현 일대로 옮겨지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십이대영자 유형의 유물 전통을 강하게 유지하고 있던 주민 집단이 요령 동부 쪽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요하(遼河) 동쪽 심양시(沈陽市) 일대에 중심을 둔 십이대영자 문화 정가와자 유형(鄭家窪子類型)이 형성되기에 이른다.
한편 연구자에 따라 남동구 석곽묘를 비롯한 십이대영자 문화 남동구 유형을 정가와자(鄭家窪子) 유형을 중심으로 요하(遼河) 양안에 형성되어 있던 고조선 연맹체(古朝鮮聯盟體)에 대비된 또 하나의 고조선 연맹체로 보고, 이 고조선 연맹체가 『위략(魏略)』에 언급되어 있는 조선후(朝鮮侯) 고조선(古朝鮮)인 것으로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