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상업 활동 |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0년~1993년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4년 이후 |
| 관할 지역 | 흑룡강성 |
| 관할 지역 | 요령성 |
| 관할 지역 | 길림성 |
한인[조선족]들이 러시아로 돈벌이 하러가는 경향이 늘어나면서 생겨난 현상.
러시아 바람은 중국에서 개혁개방이 추진되던 1980년대 중기부터 1990년대 초까지 거세게 불었는데, 주로 러시아를 무대로 하였던 보따리 장사이다.
1980년대 중기부터 한인[조선족] 젊은이들은 연해 개방 도시 및 해외로 떠나려 경향을 보였고 그만큼 농촌 지역은 점차 황폐해져 갔다. 수많은 사람이 새로운 생존 출구를 개척하면서 개인 사업을 안정적으로 꾸릴 만한 기초 투자금을 마련하기란 힘든 상황이었다. 이후 한인[조선족]들도 장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조선족 아주머니’들이 동네 밖에서 김치, 짠지 장사를 하였는데, 그들이 정성껏 만든 냉면, 찰떡, 김치, 개고기는 조선족 음식의 ‘네 가지 보물’로 여러 민족의 호응을 받았다. 조선족 아주머니들은 이 브랜드로 중국의 광활한 지역을 넘나들었고, 200만 명도 안 되는 한인[조선족]들은 너도나도 중국 전역으로 진출하였다. 뒤이어 중국 국외로 퍼져 나가면서 해외 진출이 붐을 이루었다.
한인[조선족]들은 초기에는 이웃 나라인 북한, 러시아에서 장사를 시작하였다. 이는 주로 ‘보따리 장사’였다. 이들은 북한 친척 방문의 기회를 이용하여 외국 사람들이 선호하는 일용 소비품과 중국 의약품, 보건 식품을 내다 팔고, 귀국할 때는 중국인들에게 필요한 생필품 등을 가져다 팔아 이윤을 남겼다. 통계에 따르면 1990~1993년 4년 동안,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한국, 러시아, 일본, 미국, 캐나다, 호주 등 20여 개 나라와 지역으로 친척 방문을 간 한인[조선족]은 5만 6,200여 명이다.
러시아 장사 바람 초기에는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로프스크와 같은 연해 도시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점차 모스크바, 스탈린그라드, 레닌그라드 등 러시아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이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나라들도 제집 드나들듯이 하였다. 당시 러시아 장사 바람은 수입이 짭짤하였고 목돈도 많이 벌어 살림도 부쩍 늘어났다. 그런데 그만큼 살인, 강도, 상해 등의 사고나 사건도 증가하였다.
그 력과 1994년 이후 대러시아 변경 무역이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러시아에 정착하여 자리 잡은 몇몇 성공한 상인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귀국하였다.물론 지금도 러시아 장사를 지속해서 하는 장사꾼들이 적지 않다. 이때 1992년 한중 수교를 계기로 한국 문이 활짝 열리면서 중국 한인[조선족]들은 한국으로 눈길을 돌렸다.
오늘날 ‘러시아 바람’이 그 규모와 영향력이 작지만, 의의는 크다. 러시아 바람은 한인[조선족]들이 한국, 일본, 미국 등지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이외에도 ‘러시아 바람’은 한인[조선족]들이 창업 초기 자금과 물자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든든한 물질적 토대가 되어주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