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야 | 생활·민속/민속 |
|---|---|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현대/현대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3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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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50년대 말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0년대 이후 |
동북3성 한인 사회에서 삼실 등으로 베, 모시 등의 직물을 짜기까지 손으로 하는 모든 과정의 일.
한민족은 삼, 목화 등 식물성 섬유를 원료로 하여 수공업적인 방식으로 옷감을 생산하였다. 삼과 면화 등을 기본 원료로 하여 베, 무명, 명주, 모시 등을 만들었다. 특히 옷감을 짜는 일은 여성들의 일로 길쌈은 여성들의 고된 노동의 상징으로 1950년대까지 가정에는 베틀이 있었고, 베틀 노래가 흔하게 불렀다. 그러나 현대화된 옷감이 등장하면서 1960년대 이후 길쌈은 사라졌다. 현재는 한인의 무형 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다.
한인은 이주 초기에는 베, 무명을 기본 옷 재료로 사용하였다. 해방 전까지 집집마다 베틀을 갖추어 놓고 베를 짰다. 비록 1930년대부터 공업 제품으로 된 면직물이 시장에 유포되었지만, 민간에서 베 짜기는 1950년대 말까지 계속되었다. 따라서 전통적 수공업 제품인 베, 무명, 명주, 모시는 1950년대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그러나 방직 공업의 발전에 따라 각종 천들이 시장에 공급되면서부터 재래의 수공업 제품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현대화된 고급 옷감들이 유행하게 되었다.
삼은 겨울철에 삼는다. 삼 껍질을 한 오리씩 찢어서 그 끝을 비비여 꼬아 한 줄로 이어 놓는다. 삼아놓은 삼실은 봄철에 물레에 자아서 외줄로 놓고, 그것을 잿물에 재어두었다가 가마솥에 낳고 헝겊 같은 것을 덮은 후 하루 열을 가하고, 이튿날 그것을 강변에 들고 나가 흐르는 물에 철렁철렁 헹구면 껍질이 저절로 다 벗겨져 나가고 실이 하얗게 된다. 그것을 다시 방추에 씌워서 실을 풀고 도투마리에 실을 걸고 물을 먹인다. 물은 콩물에 좁쌀을 약간 섞어 죽을 멀겋게 쑨 것으로 솔로 삼실오리에 풀을 먹이고 손으로 훑는다. 그러면 삼실이 반들반들해지고 털이 일어나지 않는다. 실이 다른 뒤 베틀에 올려놓고 베를 짠다. 베천의 질량은 ‘새’의 수치에 따라 결정된다. 새의 수치가 높을수록 좋은 베로 취급한다. ‘새’는 베를 짜는 날을 세는 단위인데 날실 40올을 한 새라고 한다.
베 짜는 일은 날씨가 너무 추워 실이 잘 끊어지는 동지와 섣달 두 달을 빼놓고 열 달 동안은 매일 시간을 내어 베를 짠다. 그렇게 하여 일 년에 6승 베를 평균 7필(1필 13자) 짠다. 요령성 와니전자촌에서는 196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10대 후반의 여자들이 물레질과 베틀 일을 시작하였다. 길쌈은 여성들의 일이기에 농한기에도 베짜는 작업은 계속되었으며, 밤에도 기름불을 켜고 물레질, 베틀 일을 하느라 3~5시간 밖에 잠을 못 잤다. 특히 설에는 남편, 부모, 자식들에게 새 옷을 만들어 입혀야 했기 때문에 한 달 전부터 밤새 일을 하였다.
베틀 일 때문에 여성들은 어깨 등이 심하게 상하는 경우도 있었다. 옷감은 대부분 검은색이나 흰색 등 단색이었다. 1950년대 베를 짤 때 노동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 부른 베 짜기 노래는 한인 민간에서 널리 퍼져있었다.
동북 3성의 경우 요령성의 일부 지방을 제외하고는 목화 생산을 할 수 없어 주로 삼을 재배하여 베를 짜서 옷감을 해결하였다. 때문에 면(綿)이 필요한 농민은 베천을 상인을 통해 면(綿)으로 바꾸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