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家庭 儀禮 |
|---|---|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현대/현대 |
중국 동북3성에서 한인들이 가정 생활에 지켜야 하는 예절.
가정에서의 예절은 부모와 자녀들 사이, 친척 사이에 지켜지는 규범이다. 가정의 예절 규범이 있음으로 해서 가족과 친척은 물론 이웃 사이에서도 화목이 이루어지게 된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다른 사람과 서로 부단한 관계를 맺으면서 생활하게 된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생활은 서로 존중하며 예절바르게 생활할 것을 요구한다. 한민족은 예로부터 예의를 귀중히 여기고 그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였을 뿐만 아니라 예절을 잘 지키는 것을 미풍양속으로 가르쳐왔다.
연변 지역의 의례 생활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는 부분적으로는 경제적·사회적 조건의 변화에 의한 것이다. 경제적 여건이 나아지면서 처음에는 약식으로 했던 것이 보다 더 격식을 갖출 여유를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변화의 방향이 반드시 전통적인 것의 회복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생활 여건의 변화는 의례에 새로운 요소가 더해지게 한다. 또한 이웃 민족과의 접촉에 의해서도 문화 변화가 일어난다. 만주족이나 한족과의 교류를 통하여 그들의 문화적 요소가 가미되거나 그들 민간 전통의 일부가 생활화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한편 중국의 현대사적 맥락에서 의례 생활의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부에 의해 진행되는 사회주의 혁명 과정에서 전통 문화는 취소되거나 억압되고 부정되는 것이 많이 있었다. 특히 문화 혁명과 이후 전개된 민속 개혁이나 봉건 미신 타파를 내세운 현대화 운동 그리고 반우파 투쟁에서 민족 정체성에 대한 고집은 오히려 반국가적이며 분열주의 사상과 행위로 매도되었다. 그 결과 자발적으로 자신의 민족문화 전통을 변질시키게 되었다.
개혁개방과 한중 외교 관계가 수립되면서 증가된 한국과의 접촉은 그들의 생활에 현대 한국 문화의 영향을 가하게 되었다. 한국 대중 가요의 보급은 물론 복장과 음식 등 물질 문화 분야와 의례 생활에서도 영향을 받게 된다. TV를 통해 한국의 가요 프로그램과 드라마, 음식 조미료 등의 광고가 안방에까지 들어온다.
해란촌의 관혼 상제를 포함한 통과 의례를 보면 출산 의례에서 한국적이라 할 수 있는 금줄이 없고 삼신상에 대해서도 모른다. 다만 가정에서 해산한 산모에게 미역국을 끓여주고 달걀을 삶아 먹이며 며칠 후에는 돼지발을 삶아 먹인다고 한다. 달걀을 먹는 것은 중국식을 모방한 것으로 한국에서는 산모의 목을 맨다고 하여 산모에게 이 달걀을 주지 않는다. 삼신상이 없기 때문에 삼칠일이라는 것도 없다.
아이들의 백일 잔치도 집에서 행하는 것이 없으며 관심 있다는 표현으로 도시에 나가서 백일 사진을 찍는 정도이다. 그래도 돌잔치는 마을과 근처에 거주하는 손님을 초대하여 잔치를 하고 돌잡이를 한다. 부모의 회갑에는 흩어진 자녀들이 모두 모여 경비를 분담하여 큰잔치를 치른다. 가장 많이 드는 비용이 음식을 장만하는 것과 부모의 의복을 장만하는 것이다. 이날 사진을 찍는 것도 중요한 행사 중의 하나다. 회갑잔치는 조선족에게 있어서 큰잔치 중의 하나로 여긴다.
장례는 마을 사람들이 부조금을 가져오고 몸부조를 하여 치른다. 이어 행하는 제사는 비록 화장을 하여 시신이 없다 해도 3년상까지는 집에서 간단하게 제사를 지내고 손님을 초대한다. 이때도 손님은 부조를 하여 경비에 보태게 한다.
장례와 제례에 반드시 참가하여야 하는 것은 형제들이다. 사촌의 경우도 같은 마을에 거주하거나 이웃마을에 거주하면 형제와 같이 도와주지만 멀리 살 경우에는 형제처럼 모이지는 않는다. 특히 부모가 생존하면 자녀들이 아무리 멀어도 부모 생일에 부모가 계시는 고향으로 오고 부모가 살아 계시면 설날에 세배를 온다. 설날 부득이한 일로 부모를 찾아오지 못하면 보름에라도 다녀간다.
중국에서는 음력설을 춘절(春節)이라 하여 가장 큰 명절로 생각하고, 춘절에는 보름간 일을 안 하고 쉬면서 부모는 물론 가까운 친척 어른을 찾아다닌다. 근래에는 음력설을 ‘큰설’이라 하여 시댁에서 설을 지내고, 양력설을 ‘작은설’이라 하여 처갓집을 가는 설날로 생각한다.
세시의례가 마을을 중심으로 한 집단적 행사라면 출생의례를 포함한 통과의례는 개인의 집을 단위로 하는 행사였다. 다만 세시의례에서 설날[중국의 춘절]인 춘절만은 가정 의례적인 행사로 남아 있어 전통적인 것을 유지하여 오는 유일한 세시풍속이다. 세시의례는 집체화의 시대와 문화 혁명 시기를 지나면서 음력의 세시적 성격에서 양력을 중심으로 한 국가 행사적 성격으로 변화하여 농민의 생활에까지 보급되었으며 이것이 지역 집단을 강화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즉 양력화된 세시의례는 집체적 성격의 유산으로 중국 사회에 침투한 것이며 한인들의 사회도 예외는 아닌 것이다.
이러한 세시의례에 비한다면 자생적이라 생각되는 통과의례는 크게 위축되고 특히 한국의 전통이 많이 상실되었다. 그러나 부모를 중심으로 한 형제간의 관계로 축소된 친족의 관계는 부모의 생일, 회갑, 장례 그리고 부모에 대한 제사 등으로 오히려 좁아진 친족이 강한 유대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친족의 사회적 기능에 설날[춘절]은 유일하게 남은 한국의 전통적 세시의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