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도 방언

한자 平安道 方言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언어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현대/현대
정의

19세기 중엽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평안도에서 동북 3성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방언을 바탕으로 형성된 조선어 방언의 하나.

개설

본래 평안도 방언은 평안 남북도에서 쓰이는 방언으로 학술적으로는 흔히 서북 방언(西北方言)이라 부른다. 중국의 평안도 방언은 평북 방언을 근간으로 하여 형성되었다. 이 방언은 음운론적으로 독특한 특징이 있고 문장 종결어미나 어휘도 표준어와 다른 점이 많다.

중국 평안도 방언의 형성과 분포

이 방언권의 형성은 이주사와 밀접히 관련된다. 1881년, 만주의 출입을 금지하는 청나라의 봉금령(封禁令)이 해제되기 전에도 이미 압록강 연안의 주민이 월강하여 대안의 만주에 정착하긴 하였지만, 봉금령이 해제된 이후 본격적으로 압록강 연안의 평북 의주, 철산, 강계, 벽동, 초산, 만포, 창성, 자성, 후창 등지의 주민이 강 건너편 만주의 단동, 통화, 집안, 환인, 관전 등지로 이주하면서 방언권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1910년 국권 상실 및 만주 지역의 정치·사회적 변동에 따라 이주가 증가하면서 그 분포 지역이 점차 확대되었다. 한 통계 자료에 의하면, 1909년에는 4만 5천여 명의 평안북도 사람들이 압록강에서 멀지 않은 만주 지역에 거주하였다고 한다. 그 후 1930년대까지 이주민이 증가하면서 요령성의 내륙 및 길림성, 흑룡강성으로까지 이주가 확대되어 오늘날과 같은 방언권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 방언은 이주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했던 평안북도 지역 사람들의 방언을 근간으로 하여 형성되었고 그 주요 분포 지역으로는 압록강 대안의 단동시, 동강시 외에 심양의 만융촌, 무순의 이석채촌, 개현의 서해 농장, 반금시 반산향 등이 있다.

요령성 무순시 이석채촌 등 일부 지역에는 경상도 출신이 섞여 살기도 하여 그에 따른 간접적인 영향도 일부 보인다. 그 밖에 흑룡강성의 오상시 등과 길림성의 돈화, 용정에도 평안도 방언을 사용하는 화자가 소수 거주하는데 이들은 대체로 여러 지역 방언 화자들과 섞여 거주한다.

요령성 평안도 방언의 음운 특징

노년층은 8모음 체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후설 모음 ‘ㅡ’와 ‘ㅜ’, ‘ㅗ’와 ‘ㅓ’의 대립이 약화되거나 아예 합쳐져 6모음 체계를 보이기도 한다. 자음의 수효는 중부 방언과 같지만 ‘ㅈ’을 치조음([ʦ])으로 조음하여 이를 경구개음([ʧ])으로 조음하는 중부방언과 다르다.

또한 치음 ‘ㄷ, ㄴ, ㅈ, ㅅ’ 뒤에서 상승 이중 모음의 음절 부음이 탈락하여 노년층에서는 ‘돟다(˂둏다, 좋다)’, ‘덩거당(˂뎡거댱, 정거장)’, ‘너름(˂녀름, 여름)’, ‘노리(˂뇨리, 요리)’, ‘누월(˂뉴월, 유월)’, ‘네절(˂녜졀, 예절)’ 등과 같이 쓰인다.

요령성 평안도 방언의 문법 특징

주격 조사는 ‘-이/-가’와 함께 ‘-래’가 널리 쓰인다. 그 예로 “내래 가갓수다(내가 가겠습니다),”, “우테부래 돟은 소식을 가제와시요(우체부가 좋은 소식을 가져왔어요).” 등의 표현을 들 수 있다. 공동격 조사로는 ‘-하구’ 또는 ‘-과’, ‘-ㄹ과’가 쓰인다. 그 예로 “아바지과 물어봐라(아버지에게 물어 보아라).”, “널과 날과 무슨 상관 있니!(너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니!)” 등의 표현이 보인다.

선어말어미로는 과거를 나타내는 ‘-앗(엇)-/-아시(어시)-’, 미래를 나타내는 ‘-갓-/-가시-’가 쓰인다. "내 먹엇다, 내 먹어시요(내가 먹었다, 내가 먹었어요).", "내 하갓다, 내 하가시요(내가 하겠다, 내가 하겠어요)."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평서형 종결 어미로는 ‘하대’에서 ‘-다,-는다’가 쓰이고, ‘평대’에서는 ‘-슴메,-슴네,-소웨’가, ‘존대’에서는 ‘-수다,-슴네다,-슴무다,-소와요’가 쓰인다. 의문형 어미(존대)로는 ‘-습네까,-습니까’가, 청유형 어미(존대)로는 ‘-읍세다,-자요,-읍시다’가, 명령형 어미(존대)로는 ‘-으시라요’가 흔히 쓰인다. "문을 닫아 걸구 내다보디두 않습무다(문을 닫아걸고 내다보지도 않습니다).", "내 모르갓수다(내 모르겠습니다).", "이걸 보갓습네까(이걸 보겠습니까)?", "여기 앉으시라요(여기 앉으시지요)!", "같이 가 봅세다(같이 가 봅시다).", "내과 같이 가시자요(나와 같이 가시지요)." 등이 그 예이다.

요령성 평안도 방언의 어휘 특징

친족어로는 ‘큰아반, 큰아배(할아버지), 클마니, 클만(할머니), 아바지(아버지), 오마니(어머니), 맏아바니(큰아버지), 맏오마니(큰어머니), 서나(남편, 사내), 에미네, 낸:(아내, 여자), 오루바니(오라버니), 적은아(동생), 가시아바지(장인), 가시오마니(장모)’ 등이 쓰인다.

이 방언에서 흔히 쓰이는 특징적인 어휘로는 ‘싸다(비싸다)’, ‘눅다(싸다)’, ‘고추(후추)’, ‘댕가지, 댕추, 당추(고추)’, ‘찔게(반찬)’, ‘과:티다(떠들어대다)’, ‘놀멘(천천히)’, ‘알쭌하다(오붓하다)’, ‘우티(옷)’ 따위가 있다.

한편, 평안도 방언 화자들은 한족과의 접촉 과정에서 한어를 직접 차용해서 쓰기도 한다. 이때의 한어는 보통화(普通話) 외에 요령성 지역의 한어 방언도 있다. 예컨대, ‘링거’는 ‘땐디(點滴)’ 외에 ‘뚀핑(吊甁)’, ‘띠류(滴流)’와 같은 한어 방언을 차용해 쓰고 있다. ‘양배추’는 ‘까드배’, ‘까다바이’, ‘까다배’라 하는데 이 역시 요령성의 한어 방언 ‘疙瘩白(흘탑백)[gēdàbài](덩이, 뭉치, 덩어리)’, ‘嘠的白(알적백)[gādebai]’, ‘噶的白(갈적백)[gádebai]’를 차용한 말이다.

참고문헌
  • 김영배, 『평안 방언 연구』(동국대 출판부, 1984)
  • 중국조선어실태조사보고 집필조, 『중국 조선어 실태 조사 보고』(민족 출판사, 1985)
  • 곽충구, 「중국 요령성 반금시 평북 철산·자성 지역어 조사 자료」(1996)
  • 왕한석, 「언어 생활」,(『중국 요령성 한인 동포의 생활 문화』, 국립 민속 박물관, 1997)
  • 박경래·곽충구·정인호·한성우·위진, 「재중 동포 언어 실태 조사(보고서)」(국립 국어원, 2012)
  • 이병근·정인호, 「중국 조선어 방언 조사」(『한반도와 중국 동북 3성의 역사 문화』, 서울대 출판부, 1999)
  • 이금화, 「평북 방언 친족어 연구」(『방언학』 19, 한국 방언 학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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