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明月江이라 부르게 된 緣由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전설 |
|---|---|
| 주요등장인물 | 만주련군|명월진 부녀자 |
| 모티프유형 | 국민 반동파의 동북지역 선점 야욕과 훈춘시 부녀자들의 민주련군 위호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6년 6월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6년 |
| 관련 지명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에서 ‘명월강의 명칭 유래’와 관련하여 전승되고 있는 한인 설화.
「명월강이라 부르게 된 연유」는 ‘명월강’의 명칭 유래를 설명하는 지명 전설(地名傳說)이다. 안도현 명월진의 부녀자들이 민주연군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했다는 데서 이후 사람들이 부르하통하를 “명월강(明月江)”으로 바꾸어 불렀다는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다.
리룡득[남, 1940년 안도현 명월진 출생, 민간 문학가]이 1986년 6월에 안도현 명월진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 최채봉, 변순녀에게서 채록했다. 2006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발간한 『동북 조선족 거주 지역 지명 전설』에 관련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명월진 사람들은 부르하통하를 달리 ‘명월강’이라고 부른다. 1945년 광복 후, 국민당 반동파는 동북지역을 선점하려 했다. 이에 민주연군은 1946년 4월에 훈춘으로 진입했다. 그러나 숱한 병사들이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렸다. 명월진의 부녀자들은 자식 같은 병사들을 위해 밥을 짓고 빨래를 했다.
통계에 의하면, 1947년과 1948년에 400여 명의 부녀자들이 3만 6,900근의 쌀밥을 병사들에게 대접했으며, 2,200여 명의 부녀자들이 3,000여 채의 이불과 4,000여 켤레의 신을 지어 병사들에게 보냈다. 이후로 사람들은 ‘밝은 달이 뜬 강과 같이 부드러운 은혜를 베풀어준 부녀자들’이라는 의미에서 부르하통하를 “명월강(明月江)”으로 바꾸어 불렀다.
「명월강이라 부르게 된 연유」의 모티프는 ‘국민당 반동파의 동북지역 선점 야욕과 훈춘시 부녀자들의 민주연군 호위’이다. 이 작품에서 국민당 반동파와 맞선 민주연군을 위해 부녀자들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함으로써 국민당 반동파를 몰아내는 데 앞장섰음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