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산 비석」

한자 石門山碑石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야사
주요등장인물 변무감독 오록정
모티프유형 일제의 간도 일본총영사관 설치와 변무 감독 오록정의 연길 변무 조사 보고서 작성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미상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6년
관련 지명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정의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에서 ‘석문산 비석의 건립 유래’와 관련하여 전승되고 있는 한인 야사.

개설

「석문산 비석」은 ‘석문산비석’의 건립 유래를 설명하는 야사(野史)이다. 청조 말에, 변무 감독(邊務監督) 오록정(吳綠貞)이 일제의 간도 강점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비를 세웠다는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리용득[남, 1940년 안도현 명월진 출생, 민간 문학가]이 안도현 석문진에 거주하고 있는 한 한인에게서 채록했다. 2006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발간한 『동북 조선족 거주 지역 지명 전설』에 관련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내용

안도현 석문진과 명월진 경계에 석문산 비석(石門山碑石)이 서 있다. 이 비석은 청조 말년에 변무 감독 오록정이 세웠다. 당시 이곳은 ‘토문령’이라고 불렸는데, 오록정이 길림 부근의 토문령과 중복되는 지명이라 석문산으로 바꾸었다. 돌이 많다는 데서 딴 지명이었다.

1907년 일제는 용정을 점령하고 조선 통감부 간도 파출소를 설치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간도 협약을 맺고 간도 일본 총영사관을 설치했다. 청은 오록정을 파견하여 일제의 야욕을 저지할 수 있는 근거로서 간도 지역의 역사, 사회와 관련한 보고서를 작성하라 했다. 오록정은 2개월 간 현지 조사를 통해 “연길 변무 조사 보고서”를 작성했다. 청은 이 자료를 바탕으로 일제의 침략 구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오록정은 이러한 상황을 석문산 비석에 자세히 기록했다.

모티브 분석

「석문산 비석」의 모티프는 ‘일제의 간도 일본 총영사관 설치와 변무 감독 오록정의 연길 변무 조사 보고서 작성’이다. 일제는 1909년 9월에 ‘간도 협약’에 의거하여 간도 일본 총영사관을 용정에 설치했다.

간도 일본 총영사관은 총영사, 부영사, 부관, 서기원, 통역, 경찰부 등 기구를 두고, 간도의 정치, 경제, 문화, 군사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반일운동을 잔혹하게 탄압했다. 이에 청의 오록정은 “연길 변무 조사 보고서”를 작성하여 간도 일본 총영사관에서 수집한 자료들을 일제히 반박했다.

이 작품은 설화라기보다 실제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일제의 탄압에 맞선 청나라 위정자의 고군분투를 기억하고자 회자시킨 야사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석문산 비석은 2004년에 안도현 명월진 ‘장백산 문화 박람성’으로 이전했다.

참고문헌
  • 『한국 구비문학 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
  • 『한국 민속 문학 사전: 설화편』(국립 민속 박물관, 2012)
  • 리용득, 『동북 조선족 거주 지역 지명 전설』(연변인민출판사, 2006)
  • 연변대학 조선 문학 연구소, 『지명 전설집』(보고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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