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재다리」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길림성 장춘시 유수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설화
주요등장인물 백청방|아내|마우재 군관
모티프유형 마우재의 횡포와 죽음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90년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6년
관련 지명 길림성 장춘시 유수시
정의

길림성 장춘시 유수시에서 ‘마우재다리의 명칭 유래’와 관련하여 전승되고 있는 한인 설화.

개설

「마우재다리」는 ‘마우재다리’의 명칭 유래를 설명하는 지명 전설(地名傳說)이다. “마우재”는 살인, 방화, 강간, 폭행 등을 일삼았던 러시아 침략자들을 비하하는 말이다. 어느 부부가 마우재 군관과 병사를 죽이고 다리 밑에 묻었다는 데서 그 다리를 “마우재다리”로 불렀다는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리룡득[남, 1940년 안도현 명월진 출생, 민간 문학가]이 1990년에 안도현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 문사반에게서 채록했다. 2006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발간한 『동북 조선족 거주 지역 지명 전설』에 관련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내용

길림성 장춘시 유수시 류가향 연강촌 앞에 다리가 하나 있다. 이를 흔히 ‘마우재다리’라고 한다. “마우재”는 러시아 침략자들을 비하하는 말이었다. 마우재들은 동북에 들어와 살인, 방화, 강간, 폭행 등을 일삼았다.

당시 연강촌에 ‘백청방’이라는 사람이 결 고운 아내와 함께 살았다.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한 마우재 군관이 병사 한 명을 대동하고 백청방의 집으로 들이닥쳤다. 마우재 군관은 백청방의 아내를 평소 눈여겨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내는 백청방에게 귓속말로 무엇을 잠깐 이르고는 뒷방에 숨어 있으라 했다.

아내는 마우재 군관을 교태부리며 맞아들였다. 마우재 군관은 넋이 나가 총을 내려놓고 옷을 벗었다. 그때 뒷방에 숨어 있던 백청방이 도끼를 내리쳐 마우재 군관을 죽였다. 밖에서 대기하던 병사는 마우재 군관이 아내를 겁탈하는 소리인 줄 알고 마냥 기다리고 있다가 또한 백청방의 도끼에 맞아 죽었다. 백청방과 아내는 두 사람의 시신을 연강촌 앞 다리 밑에 묻었다. 이후로 사람들은 그 다리를 ‘무우재가 묻힌 다리’라는 의미에서 “마우재다리”라고 불렀다.

모티프 분석

「마우재다리」의 모티프는 ‘마우재의 횡포와 죽음’이다. 청과 러시아는 1860년에 북경조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러시아는 우수리강 동부지역인 40만 ㎡의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변계(邊界) 푯말을 청나라 경내로 옮겨놓는가 하면, 청나라 영토에 보루를 설치하는 등 잠식 활동을 계속했다. 심지어 변경의 민간인 마을을 습격하여 온갖 횡포를 부렸다.

이 작품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어느 부부가 마우재 군관을 죽이고 그의 시신을 다리 밑에 묻었다는 것을 기억하고자 “마우재다리”로 불렀다는 것을 통해 당시 러시아 침략자에 대한 반감이 얼마나 극에 달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참고문헌
  • 『한국 구비문학 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
  • 『한국 민속 문학 사전: 설화편』(국립 민속 박물관, 2012)
  • 리룡득, 『동북 조선족 거주 지역 지명 전설』(연변인민출판사, 2006)
  • 연변대학 조선 문학 연구소, 『지명 전설집』(보고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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