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사랑의 무덤」

한자 國境없는 사랑의 무덤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설화
주요등장인물 조씨 처녀|리희진
모티프유형 일제의 중국 동북 지역 점령과 어느 노부부의 이별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미상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6년
관련 지명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정의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에서 ‘일제의 동북 점령에 대한 반감’과 관련하여 전승되고 있는 한인 설화.

개설

「국경없는 사랑의 무덤」은 어느 부부가 죽어서도 함께 하자 약속했지만, 일제가 중국 동북 지역을 점령한 탓에 각기 다른 곳에 묻혀야 했던 비운의 개인사를 설명하는 묘총 전설(墓塚傳說)이다.

채록/수집 상황

리룡득[남, 1940년 안도현 명월진 출생, 민간 문학가]이 안도현 명월진에 거주하고 있는 한 한인으로부터 채록했다. 2006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발간한 『동북 조선족 거주 지역 지명 전설』에 관련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내용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명월진 명월 저수지 서쪽 산정에 한 기의 무덤이 있다. 무덤 앞에는 “淑夫人河陽趙氏之墓(숙부인 하양 조씨의 무덤)”이라고 새겨진 비석이 있다.

1849년을 전후하여 명월진 인근에 조씨 성을 가진 한족 장사꾼이 살았다. 조씨는 정숙하고 마음씨 고운 16살 딸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함경남도 리원군의 사또 아들인 리희진이 백두산 일대를 유람하다가 우연히 조씨 처녀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은 양가의 허락을 받고 혼례를 치렀다. 그리고 리원군에서 행복한 삶을 꾸렸다. 그런데 1935년 조씨가 중병에 걸렸다.

조씨는 임종할 때, 자신이 죽으면 고향 땅에 묻어 달라고 청했다. 리희진은 아내의 시신을 명월진에 고이 모셨다. 2년 후 리희진도 자식들에게 자신이 죽으면 아내 곁에 묻어 달라 유언하고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일제가 동북 지역을 장악하는 바람에 자식들은 부친의 유언을 따를 수 없었다. 하여 리원군에 부친의 시신을 모셨다. 이후로 사람들은 ‘두 사람은 저승에서도 일제의 만행을 규탄할 것’이라고 했다.

모티프 분석

「국경 없는 사랑의 무덤」의 모티프는 ‘일제의 동북 지역 점령과 어느 노부부의 이별’이다. 일제는 1931년에 중국 동북 지역을 점령할 목적으로 전쟁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듬해 3월에 '만주국'이라는 괴뢰 정권을 수립했다. 이로써 중국 동북 지역이 일제의 손아귀로 넘어갔다.

이 작품은 당시 정세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데, 일제가 동북 지역을 점령한 탓에 “죽어서도 어미와 함께할 테니 같은 곳에 묻어 달라”는 부친의 유언을 자손들이 받들지 못한 데 대한 안타까움, 나아가 일제에 대한 분노가 표출되고 있다. 일제의 횡포가 극에 달할수록, 일제에 대한 반감도 극에 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문헌
  • 『한국 구비문학 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
  • 『한국 민속 문학 사전: 설화편』(국립 민속 박물관, 2012)
  • 리룡득, 『동북 조선족 거주 지역 지명 전설』(연변인민출판사, 2006)
  • 연변대학 조선 문학 연구소, 『지명 전설집』(보고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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