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抗日軍祠堂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 |
|---|---|
| 주요등장인물 | 동북 항일 연군|일본 토벌대 |
| 모티프유형 | 항일군의 용왕당 매복과 일본 토벌대 소탕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미상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6년 |
| 관련 지명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에서 ‘항일군 사당의 명칭 유래’와 관련하여 전승되고 있는 한인 설화.
송화강 상류에 있는 뉘위허[怒洈河]는 낙차가 심해 많은 뗏목꾼들이 목숨을 잃었다. 하여 뗏목꾼들이 절벽에 용왕당을 세우고 이곳을 지날 때마다 제를 올렸다. 1939년 여름, 동북 항일 연군 제1로군 3방면 통솔자인 진한장이 항일 군사들에게 제1로군 통신연락소조에 중요한 문건을 전달하라고 명했다.
이에 항일 군사들이 길을 향했다. 그런데 뉘위허 인근의 사당 앞에서 일본 토벌대와 맞닥뜨렸다. 항일 군사들은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일본 토벌대가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사당 안에서 일본 토벌대를 향해 총탄이 쏟아졌다. 일본 토벌대는 혼비백산 달아났다. 항일 군사들은 일본 토벌대가 사당 쪽을 향해 오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일부는 사당 안에, 일부는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 일본 토벌대를 유인했던 것이었다. 이후 일본 토벌대는 그 사당을 “신비의 항일군 사당”이라고 부르며, 더 이상 그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항일군 사당」의 모티프는 ‘항일군의 용왕당 매복과 일본 토벌대 소탕’이다. 항일유격대는 비정규 무장단체로 적의 통치구역과 점령구역, 인접 지역에서 분산, 유동, 습격이라는 방식으로 적을 공격했다. 곧 적이 공격하여 나오면 퇴각하고, 적이 퇴각하면 진공했으며, 적이 피로하면 타격하고, 적이 도망가면 추격하는 등 여러 전략을 구사했다. 이러한 항일유격대의 전략, 즉 규모의 간소화, 기민성과 신속성 등을 이 작품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