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洪範圖골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 |
|---|---|
| 주요등장인물 | 홍범도 장군 |
| 모티프유형 |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 전투 승리와 소동골 입성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98년 여름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6년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20년 6월 |
| 관련 지명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에서 ‘홍범도골의 지명 유래’와 관련하여 전승되고 있는 한인 설화.
「홍범도골」은 ‘홍범도골(洪範圖谷)’의 지명 유래를 설명하는 지명 전설(地名傳說)이다. 홍범도(洪範圖: 1868~1943년) 장군이 봉오동전투를 승리로 이끈 후 소동골의 한 골짜기에서 전열을 가다듬었다는 것을 기리기 위해 그 골짜기를 “홍범도골”이라고 불렀다는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다.
리룡득[남, 1940년 안도현 명월진 출생, 민간 문학가]이 1998년 여름에 도문시 소동골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 한철범에게서 채록했다. 2006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발간한 『동북 조선족 거주 지역 지명 전설』에 관련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 소동골에 아늑하고 평평한 골짜기가 있다. 이를 흔히 ‘홍범도장군골’이라고 한다. 홍범도 장군은 1920년 6월에 봉우동 전투에서 일본군 150명을 사살하고, 보총 150여 자루, 기관총 3정 등을 노획하는 전공을 세웠다. 그리고 주요 활동 근거지인 왕청현 대감자 부흥툰으로 떠났다.
이후 홍범도 장군이 항일 병사 수백 여 명과 함께 연길시 의란구로 이동하다가 소동골에서 반나절 간 쉬며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동무야 잘 싸웠다 조선의 용사들 / 총 끝에 번개불이 번쩍거리며 / 악마의 왜놈들을 쳐부수면서 / 입술에 피흘리며 너는 갔구가 // 고향에 돌아가면 너 자랑 충성을 / 늙으신 부모님게서 전하여 주마 / 태극기 앞에 놓고 쓰러지면서 / 입술에 피흘리며 너는 갔구나”라는 ‘독립군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그 노랫소리가 온 골짜기에 메아리쳤다. 이후로 사람들은 ‘홍범도 장군이 잠시 머물렀다’는 의미에서 이 골짜기를 “홍범도골”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