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明月溝의 由來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명월진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 |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미상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6년 |
| 관련 지명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에서 ‘명월구의 지명 유래’와 관련하여 전승되고 있는 한인 설화.
리룡득[남, 1940년 안도현 명월진 출생, 민간 문학가]이 돈화시 현유향에 거주하고 있는 한 한인에게서 채록했다. 2006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발간한 『동북 조선족 거주 지역 지명 전설』에 관련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1881년에 청나라는 백두산 일대의 봉금령(封禁令)을 해제했다. 이때부터 조선의 백성들이 자유로이 동북변경을 넘나들며 땅을 개간했다. 『명월구 요람』에는 1894년에 손백강, 부모중이라는 두 사람이 산동으로부터 이주하여 처음으로 황무지를 개간했고, 이후 산동의 농민들이 대거 이주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수년 후에는 ‘옹성라자’라는 비교적 큰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 옹성라자를 어느 때부터 ‘명월구’라고 개칭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1933년에 일제가 돈도선[돈화-도문] 철로를 개통시키면서 이곳 역을 ‘명월구’라고 불렀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안도현 문물 관리소 건축 공사장에서 발견한 석질편액에 “명월 금융부”라는 글자가 민국원년(1912)에 기록되었기에 1933년부터 명월구라고 불렀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한편 1931년 9·18 사변이 일어나기 바로 전에 한 시인이 이곳에 들러 옹성라자를 산책하다가 “아 밝은 달 명월이여, 그 아름다움에 산천도 한결 휘황하여라.”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고 하지만 명확하지 않다.
「명월구의 유래」는 ‘명월구(明月沟)’의 지명 유래를 설명하는 형식의 이야기이다. 절대 설화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관련 기록을 통해 현 안도현 명월진의 지명 유래를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