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海蘭江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지명 전설 |
|---|---|
| 주요등장인물 | 해|란 |
| 모티프유형 | 해와 란의 수로 건설과 농지 개척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미상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6년 |
| 관련 지명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용정시(龍井市)에서 ‘해란강(海蘭江)의 지명 유래’와 관련하여 전승되고 있는 설화.
조선 사람들이 두만강을 넘어 새로운 땅을 개척할 무렵, 해란강은 이름 없는 작은 냇물에 불과했다. 그 무렵, 세전이벌 어구에 노소 삼대(三代)가 한데 어울려 살았다. 그 집에는 ‘해’와 ‘란’이라는 막내둥이 오누이가 있었다.
어느 해, 란은 조선삼남(三南)에 있는 외갓집으로 놀러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생전 처음으로 쌀밥을 먹었다. 란은 쌀밥이 별미인지라, 외할아버지에게 부탁하여 볍씨 한 말을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듬 해 오빠 해와 함께 진펄에 논 두 마지기를 풀었다. 그 해 풍년을 거두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에게 수확한 쌀을 이듬해 종자로 나누어주다 보니, 정작 그 해에는 쌀밥을 먹을 수 없었다.
이듬해 다시 논에 모를 심었다. 그런데 가뭄이 닥쳐 논이 갈라졌다. 해와 란은 골안의 물줄기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산기슭 우묵한 곳에서 샘을 발견했다. 샘을 깊이 파니 물이 콸콸 쏟아졌다. 해와 란은 마을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물줄기를 마을 쪽으로 끌어들였다. 며칠 사이에 세전이벌로부터 평강벌, 그리고 모든 논에 이르기까지 물이 넘쳤다. 이에 대풍을 거둘 수 있었고, 마을 사람들 모두 쌀밥을 먹을 수 있었다. 이후로 사람들은 그 강을 ‘해’와 ‘란’의 이름을 따 “해란강”이라고 불렀다.
「해란강」의 모티프는 ‘해와 란의 수로 건설과 농지 개척’이다. 중국 동북 지역은 잡초 우거진 황무지였다. 이주민들은 거친 바람을 안으며 얼음 덮힌 강을 깨고 들어가 봇둑을 막고 물도랑을 파며 황무지를 개척했다. 억척같이 맨손으로 씨를 심고 맨손으로 낱알을 일구었다. 그리고 고향에서 농사짓던 방식 그대로, 중국 동북 지역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수전을 만들었다. 각종 농기구와 일상 생활 용품까지 고향의 전통을 계승했다. 농업이 유일한 생활 수단이었기 때문에 두레 농사를 지었다.
이 작품을 통해서도, 동북 지역의 한인이 벼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남한으로부터 볍씨를 들여와 마을 사람들이 함께 나누고, 또 가뭄에 임해 하나로 단결하여 물길을 끌어들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용정시 광소촌의 어곡전(御穀田)에서 수확한 쌀을 만덕 황제에게 진상했다는 사실이 우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다시금 상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