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龍井의 傳說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 |
|---|---|
| 주요등장인물 | 처녀|용왕|왕자|지주 |
| 모티프유형 | 처녀의 왕자 구명과 왕자의 보은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미상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7년 |
| 관련 지명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용정시(龍井市)에서 ‘용정(龍井)의 지명 유래’와 관련하여 전승되고 있는 한인 설화.
「용정의 전설」은 ‘용정’의 지명 유래를 설명하는 지명 전설(地名傳說)이다. 용왕의 셋째 아들이 우물로 솟구쳐 나와 처녀와 해로했다는 의미에서 그 우물을 '용정'으로 불렀다는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다.
옛날, 해란강 기슭에 한 처녀가 홀어미를 모시고 살았다. 처녀는 삯빨래질을 하며 홀어미를 봉양했다. 어느 해 여름, 처녀가 해란강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동네 아이들이 알록달록한 뱀을 잡아 어떻게 죽일까 고민하고 있었다. 처녀는 뱀이 측은하여 동네 아이들에게 몇 푼을 주고 뱀을 사서 풀어주었다.
며칠 후, 처녀가 빨래를 하고 있는데, 그 뱀이 나타나 순식간에 청년으로 변했다. 처녀가 놀라자, 총각은 ‘저는 동해 용왕의 셋째 왕자인데 잠시 뱀으로 화하여 인간세상을 구경하다가 아이들한테 잡혔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용왕이 은혜를 갚고자 하니 용궁에 함께 가자’고 했다. 처녀는 왕자를 따라 용궁으로 들어갔다. 처녀는 용왕의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두고 온 홀어미가 걱정되었다. 처녀는 용왕에게 뭍으로 보내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왕자는 용왕에게 ‘처녀와 결혼하여 용궁에서 홀어미를 모시고 살고 싶다’고 했다.
용왕은 ‘인간은 용궁에서 살 수 없다’며 왕자를 타일렀다. 왕자는 처녀를 다시 뭍으로 돌려보내며, ‘100일 후 집 안 뜰의 우물로 나올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처녀는 오매불망 왕자를 기다렸다. 그러나 99일째 되던 날, 건너 마을 부자가 찾아와 ‘내일까지 빚을 갚지 않으면 첩으로 맞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갔다. 처녀는 왕자를 더욱 애타게 기다렸다.
그러나 100일째 되는 날, 해가 기울 때까지 왕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처녀가 우물에 몸을 던지자 그제야 왕자가 처녀를 안고 우물에서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왕자는 처녀, 홀어미와 함께 산속으로 들어가 행복하게 살았다. 이후로 사람들은 ‘용이 승천한 우물’이라는 의미에서 그 우물을 '용정(龍井)'이라 불렀다.
「용정의 전설」의 모티프는 ‘처녀의 왕자 구명과 왕자의 보은’이다. 기록에 따르면, 1877년에 함경도 농민들이 현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로 처음 이주했다. 이주 당시에는 우물이 없어 고생을 하다가 1886년에 ‘용두레 우물’을 발견한 이래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을을 이루었다. 그들에게 우물은 생명수나 다름없었다.
불모지였던 이곳에 언제, 누가 들어 이 우물을 팠는지 몰랐기에 용두레 우물을 더욱 신비롭게 여겼다. 이러한 인식에서, 용왕의 아들이 인간 처녀를 만나기 위해 드나들던 통로가 바로 용두레 우물이었다는 이야기를 자연스레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