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金剛山 숯구이 總角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민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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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등장인물 | 산호|이정승 댁 아씨|태백금성|신관사또 |
| 모티프유형 | 숯구이 총각과 이정승 댁 아씨의 결혼|이정승 댁 아씨의 내조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
차병걸[조선족 민담 구연 예술가]이 ‘나무꾼 총각이 당상관에 오른 사연’을 구연한 한인 설화.
「금강산 숯구이총각」은 ‘산호’라는 총각이 정승 댁 아씨를 만나 부부의 연을 맺고, 이후 ‘태백금성(太白金星)’이라는 신선으로부터 문장과 무예를 익혀 나라의 큰 재목으로 성장한다는 내용의 민담(民譚)이다.
차병걸[남, 1925년 평안남도 순천군 신창면 출생, 1939년 흑룡강성으로 이주]의 구연 작품으로, 그가 1985년부터 구연한 420여 편의 설화 중 120편을 선정하여 2010년에 연변대학 조선 문학 연구소에서 『차병걸 민담집』(연세 대학교 국학 총서 73, 중국 조선 민족 문학 대계 26)으로 발간했다. 이 자료집에 본편이 수록되어 있다.
금강산 숲속의 한 초가에 ‘산호’라는 총각이 홀어미를 모시고 살았다. 산호는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자, 홀어미에게 백일을 기약하고 서울로 향했다. 산호는 서울에 도착하여 어느 주막에서 며칠 간 묵었다. 주막 옆집에는 고대광실 이정승 댁이 있었다.
하루는 산호가 이정승 댁의 후원에서 놀고 있는 아씨를 우연찮게 보았다. 아씨도 산호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산호는 의관을 마련하여 정제한 후 눈에 고약을 바르고 대서당(大書堂)으로 갔다. 그곳의 노선비들에게 ‘눈병이 생겨 그러하니 연정의 시를 써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그 편지를 아씨의 몸종에게 전했다. 아씨는 편지의 글을 보니 일필휘지요, 내용을 보니 이백의 것이라, 곧바로 행장을 챙겨 산호를 따랐다. 산호는 아씨에게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사람임을 밝혔다. 그러자 아씨는 이미 정한 마음이니 그대로 따르겠다고 했다.
산호는 아씨를 데리고 고향으로 향했다. 그리고 혼례를 치렀다. 그러나 아씨는 신방을 꾸미지 않고, 10년을 기약하며 산호에게 글공부 하러 떠날 것을 종용했다. 산호는 즉시 큰 스승을 찾아 길을 떠났다. 그러던 어느 날, 숲속에 쓰러져 있는 백발노인을 만났다. 산호는 백발노인을 정성껏 간호했다. 그러자 백발노인이 자신은 ‘신선 태백금성(太白金星)인데 너의 사람됨을 보려 했노라’고 했다.
이후 산호는 태백금성으로부터 문장과 무예를 익혔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임금은 산호가 문장뿐만 아니라 무예도 뛰어남을 알고 늘 곁에 두었다. 어느 날, 산호가 임금의 자객을 도술로써 막았다. 임금은 산호에게 후한 상금을 내어주며 잠시도 떠나보내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산호는 고향으로 내려가 아내와 홀어미를 모시고 오겠다고 했다. 임금은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한편 아씨는 10년 간 홀어미를 모시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신관 사또가 아씨에게 숙청들 것을 요구했다. 아씨가 거절하자 주리를 틀어 죽을 지경에 놓여 있었다. 산호는 태백금성에게 신비한 약초를 받아 아내를 구했다. 그리고 사또를 응징했다. 이후 산호는 아내와 함께 이정승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제야 이정승도 산호를 정식 사위로 맞아들였다.
「금강산 숯구이총각」의 모티브는 ‘숯구이총각과 이정승 댁 아씨의 결혼’과 ‘이정승 댁 아씨의 내조’이다. 숯구이총각은 우연한 계기로 이정승 댁 아씨를 만나 결혼하지만, 아내의 종용으로 첫날밤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글공부를 떠난다. 결국 10년 만에 장원급제하여 신관사또의 횡포로 위기에 빠진 아내를 구한다.
이 작품은 유형적인 인물, 유형적인 사건, 유형적인 주제를 특성으로 하는 전형적인 민담으로서 ‘부녀자 내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