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總角과 세아씨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전설 |
|---|---|
| 주요등장인물 | 총각|세 정승댁 아씨 |
| 모티프유형 | 총각이 세 명의 정승 댁 아씨와 치른 혼례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
| 관련 지명 | 경상남도 남해군 |
김덕순[조선족 민담 구연 예술가]이 ‘한인[조선족] 사회의 일부다처제 풍습 유래’를 구연한 설화.
「총각과 세 아씨」는 어느 총각이 혼사장애(婚事障碍)를 딛고 세 정승 댁의 세 아씨와 혼인했다는 것을 설명하는 인물 전설(人物傳說)이다. 총각의 어려운 처지를 공감한 세 아씨들이 총각을 글공부시켜 장원급제 하도록 하고, 총각의 정실부인, 둘째부인, 셋째부인이 되어 해로한다는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다.
김덕순[여, 1900~1988, 경상북도 출생, 1930년 길림성 장백현으로 이주]의 구연 작품으로 『김덕순 고사집』[상해 문예 출판사, 1983]에 수록되어 있다. 이후 2010년에 연변대학 조선 문학 연구소에서 『김덕순 민담집』[연세 대학교 국학 총서 73, 중국 조선 민족 문학 대계 25]을 발간했는데, 이 자료집에도 동일한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옛날 어느 아이가 6살에 아비를 여의고 홀어미와 살았다. 그리고 3년 후 어머니마저 봉사가 되었다. 아이는 일찍 철이 들어 걸식으로 홀어미를 봉양했다. 그리고 10살 되던 해 홀어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아이는 사람들의 보살핌으로 근근이 목숨을 연명했다.
16살 총각이 되던 어느 날, 아리랑산을 넘는데 한 노파가 쓰러져 있었다. 총각은 노파를 추슬러 먹을 것을 주었다. 노파는 정신을 차린 후 총각에게 ‘팔자가 기구하여 18살에 호랑이 밥이 될 것인데, 화를 면하려면 아리랑산 아래에 있는 세 정승 댁의 세 규수를 모두 아내로 맞아야 할 것이다.’며 사라졌다.
총각은 노파의 말에 이끌려 우선 김정승 댁의 담을 넘었다. 김정승 댁의 아씨가 총각을 보고 놀라자, 총각은 자신의 사연을 소상히 털어놓았다. 아씨는 총각이 가여웠다. 그리하여 이정승, 최정승 댁의 아씨들과 함께 매일 밤 총각에게 글공부를 시켰다. 그리고 과거에 임해, 김정승 댁의 아씨가 과거를 주관하는 아비에게 시제(詩題)를 물었다. 김정승은 딸아이가 과거를 볼 수 없는지라 선뜻 시제를 알려주었다. 총각은 시제를 미리 전해 듣고 과거에 장원급제했다.
총각은 어사가 되어 김정승의 딸을 정실부인으로, 이정승의 딸을 둘째 부인으로, 최정승의 딸을 셋째 부인으로 맞았다. 이때부터 한인[조선족] 사회에 일부다처제의 풍습이 퍼지기 시작했다.
「총각과 세 아씨」의 모티프는 ‘어느 총각이 세 명의 정승 댁 아씨와 치른 혼례’이다. 김만중이 저술한 소설 『구운몽(九雲夢』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당대 유학자들이 꿈꾸었던 이상향의 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즉, 당대 유학자들은 입신양명하여 재색을 겸비한 숱한 처첩을 거느리며 한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을 꿈꾸었다.
이 작품에서도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그러한 이상향의 세계가 그려지고 있다. 보잘 것 없는 한 총각이 세 정승 댁의 아씨들로부터 글공부를 익혀 입신양명하는 것은 물론 그들을 처첩으로 맞아들여 백년해로한다. 설화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빚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