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畵工과 선비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전설 |
|---|---|
| 주요등장인물 | 백운학|오화룡 |
| 모티프유형 | 백운학과 오화룡의 우애|백운학의 신이한 그림 솜씨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7년 |
황구연[조선족 민담 구연 예술가]이 ‘화공(畵工) 백운학의 신이한 그림 솜씨’를 구연한 설화.
「화공과 선비」는 화공 백운학이 신이한 그림 솜씨를 통해 선비 오화룡과 나눈 우정을 설명하는 인물 전설(人物傳說)이다. 화공 백운학과 선비 오화룡은 하늘이 낸 재주를 갖고 있지만, 미천한 신분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 선계로 떠난다는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다.
옛날 청산골에 화공 백운학이 살았다. 강을 사이에 두고 용천골에는 선비 오화룡이 살았다. 두 사람은 죽마고우였다. 늘 글과 그림을 함께 연마했다. 그러나 미천한 신분들이라 과거에 급제했지만 벼슬을 받지 못했다. 두 사람은 낚시를 즐기며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하루는 오화룡이 전염병에 걸려 몸져눕게 되자 백운학이 거북이 그림을 선물로 주었다. 그 거북이 그림을 보고, 누군가 천 냥에 넘기라 했다. 그런데 오화룡이 보아하니 거북이 발이 없었다. 그리하여 발을 그려 넣었더니 거북이가 살아 연못 속으로 사라졌다.
얼마 후, 오화룡이 백운학을 찾았다. 백운학은 ‘불 화(火)’ 자를 써주며 구들장을 뜯고 이 글을 넣으면 방 안이 따뜻할 것이라고 했다. 과연 그러했다. 그러나 오화룡은 자신보다 더 불쌍한 처지에 놓인 이방을 위해 그 글자를 내어주었다.
또 얼마 후 오화룡이 백운학을 찾았다. 이번에는 수탉을 그려주며 벽에다 붙이라 했다. 수탉은 매일 밤 어디선가 백 냥씩을 물고 왔다. 오화룡이 의아해 수탉을 쫓으니, 궁궐 보물창고에서 백 냥을 물고 나오는 것이었다.
넋을 놓고 있다가 나졸들에게 붙잡혀 임금의 심문을 받았다. 오화룡은 백운학의 목숨을 보전시키려고 자신이 저지른 짓이라고 했다. 그때 백운학이 나타나 임금께 모든 것이 자신의 소행임을 밝혔다.
임금이 믿지 못해 시험하니, 백운학이 단번에 용마(龍馬)를 그렸다. 용마는 백지에서 뛰쳐나와 백운학과 오화룡을 태우고 하늘로 사라졌다. 임금은 하늘이 낸 천재(天才)를 알아보지 못하고 조정에 등용하지 않은 것을 땅을 치며 후회했다.
「화공과 선비」의 모티프는 ‘백운학과 오화룡의 우애 및 백운학의 신이한 그림 솜씨’이다. 조선 시대 도화서(圖畵署)의 화원(畵員)은 그림을 애호하는 문인 사대부와 더불어 조선 시대 화단을 이끌어간 두 축이었다. 도화서의 화원 역시 아무리 뛰어난 재주를 갖고 있어도 미천한 신분이라면 될 수 없는 직분이었다.
이 작품에서는 신이한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재주를 갖고 있으면서도 미천한 신분 때문에 세상에 나가지 못한 화공 백운학이 등장한다. 결국 백운학은 용마를 그린 후 그것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백운학의 승천은 세상에 대한 원망의 결과이며, 이 작품은 그 원망에 대한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이 불러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