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馬陵都上에서 一萬臺의 화살을 안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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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야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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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등장인물 | 귀곡자|손빈|방연 |
| 모티프유형 | 손빈과 방연의 의형제 결의 및 방연의 배신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7년 |
| 관련 지명 | 중국 하남성 신정(新鄭) |
황구연[조선족 민담 구연 예술가]이 ‘춘추전국시대 손빈(孫賓)과 방연(龐淵)의 쟁탈전’을 구연한 설화.
「마릉도상에서 일만대의 화살을 안기다」는 춘추전국시대에 벌어졌던 마릉(馬陵) 전투의 야사(野史)이다. 동문수학했지만 출세에 집착한 방연을 성실한 실력자 손빈이 격퇴한다는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다.
중국 전국시대 때, ‘귀곡자(鬼谷子)’라는 선생의 문하에 ‘손빈’과 ‘방연’이라는 제자가 있었다. 두 사람은 죽는 날까지 의를 지키자며, 그렇지 않으면 ‘마릉도상에서 만 개의 활을 안겨 죽이자’고 맹약했다.
방연이 먼저 위나라의 상장군이 되었다. 방연은 손빈을 찾아 함께 위나라로 가자 종용했다. 그러나 귀곡자는 손빈을 늘 만류했다.
어느 날, 귀곡자가 손빈을 불러 ‘움을 파고 들어가 백일 동안 햇빛을 피했다가 위나라로 가라.’고 금기를 내렸다. 그러나 한 달을 조금 넘기고, 손빈은 방연을 따라 길을 나섰다. 이때 귀곡자가 손빈에게 금낭[비단 주머니]를 건네며 위급할 때 깨내어 보라 했다.
위나라로 들어와 생활한 지 얼마 후, 방연의 주위 사람들이 손빈의 사람됨에 감동하여 손빈을 더 따랐다. 이에 방연은 손빈을 죽여야겠다고 생각하고 꾀를 내어 손빈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손빈은 귀곡자가 건넨 금낭이 떠올랐다. 금낭을 꺼내어보니 미칠 광(狂) 자가 쓰여 있었다. 손빈은 미치광이 흉내를 내었다. 손빈은 돼지처럼 꿀꿀대며 이것저것을 주어먹었다. 그 모습에 방연은 손빈을 놓아주었다.
손빈은 제나라로 도망쳤다. 얼마 후 방연이 한나라를 쳤다. 한나라는 제나라에 도움을 요청했다. 제나라에서는 손빈을 대장군으로 삼아 한나라를 구하라 명했다. 손빈은 한나라로 진격하는 대신 위나라로 진격했다. 방연은 어쩔 수 없이 위나라로 돌아와야 했다. 그때 손빈이 마릉고개에서 매복해 있다가 방연의 몸에 만 개의 활을 쏘아 죽였다.
「마릉도상에서 일만대의 화살을 안기다」의 모티프는 ‘손빈과 방연의 의형제 결의 및 방연의 배신’이다. 이 작품은 춘추전국시대에 벌어졌던 마릉 전투의 야사로서 손빈의 인품과 능력, 그리고 때릴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손빈과 대립각을 세웠던 방연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통해 손빈을 은연중에 좇도록 하고 있다. 야사가 설화 형식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교훈성이 함축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