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사와 그의 며느리」

한자 臨進士와 그의 며느리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설화|전설
주요등장인물 임진사|계모|임진사의 맏아들|임진사의 며느리
모티프유형 아들의 죽음과 며느리의 범인 색출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7년
관련 지명 강원도 고성군금강산 일대
정의

황구연[조선족 민담 구연 예술가]이 ‘사명당유정(泗溟堂惟政)[1544~1610년]의 출가 유래’를 구연한 설화.

개설

「임진사와 그의 며느리」는 사명당유정이 후처의 음모로 맏아들을 잃고 출가한 내력을 설명하는 인물 전설(人物傳說)이다. 유정이 신혼 첫날밤에 맏아들을 죽인 범인을 밝혀내어 처단하고 금강산으로 출가해 훗날 서산대사와 함께 임진왜란 때 외적을 물리친다는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황구연[남, 1909~1987년, 경기도 양주군 출생, 1937년 길림성 연길현[현 용정시] 이주]의 구연 작품으로 그의 첫 번째 자료집인 『천생배필』(연변인민출판사, 1986)에 수록되어 있다. 이후 2007년에 연변대학 조선 문학 연구소에서 『황구연 민담집』(연세 대학교 국학 총서 73, 중국 조선 민족 문학 대계 24)을 발간했는데, 이 자료집에도 동일한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내용

어느 고을에 임진사가 살았다. 임진사는 중년에 상처하고 후처를 맞았다. 그런데 후처가 전처의 아들을 괄시했다. 이 사실을 알고, 임진사는 아들을 급히 장가를 보냈다.

그런데 첫날 밤, 누군가 신방으로 급습해 아들의 목을 베어 갔다. 사람들은 필시 신부의 소행이거나, 신부를 흠모한 누군가의 소행일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신부는 눈물을 흘리며 결백을 고했다. 더군다나 신랑을 따라 자결하려 했다. 임진사는 며느리를 만류하며, “네가 살아서 누명을 벗으라.”고 했다.

신부는 거지 행색을 하며 임진사 집 근처를 배회했다. 밤에는 안채 마루 밑에 들어가 쪽잠을 잤다. 그런데 한밤중에 집안의 종놈이 주인마누라의 방에 들어가 실랑이를 벌였다.

이를 통해, 며느리는 주인 마누라의 사주에 의해 종놈이 신랑을 죽였고, 그 대가로 종놈은 종문서를 돌려받기로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증거가 없었다. 며느리는 종놈의 집안에 숨어들어 다시 기회를 엿보았다.

며칠 후 집안의 궤짝 속에 신랑의 머리를 숨겨 놓은 사실을 알았다. 며느리는 임진사에게 모든 사실을 고했다. 임진사는 후처와 종놈을 처단했다. 그리고 아들의 장례를 치렀다. 며느리는 그 자리에서 또 자결하려 했으나, 임진사의 만류로 친정으로 돌아갔다.

훗날 임진사는 금강산으로 들어가 중이 되었는데, 그가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와 함께 외적을 물리친 ‘사명당유정’이다.

모티프 분석

「임진사와 그의 며느리」의 모티프는 ‘아들의 죽음과 며느리의 범인 색출’이다. 설화 속의 계모(繼母)는 대부분 부정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아들이 결혼 첫날밤에 계모의 음모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첫날밤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며느리가 계모의 사주를 받은 노비가 지아비를 죽였음을 밝혀낸다. 설화의 기본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인과응보(因果應報), 사필귀정(事必歸正)을 표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한국 구비문학 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
  • 『한국 민속 문학 사전: 설화편』(국립 민속 박물관, 2012)
  • 연변대학 조선 문학 연구소, 『황구연 민담집』보고사, 2007
  • 황구연, 『천생배필』(연변인민출판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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