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金萬重의 謝氏南征記와 九雲夢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일화 |
|---|---|
| 주요등장인물 | 김만중|숙종|인현왕후|장희빈 |
| 모티프유형 | 김만중의 유배생활과 소설 집필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7 |
| 관련 지명 | 경상남도 남해군 |
황구연[조선족 민담 구연 예술가]이 ‘소설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의 집필 배경’을 구연한 작품.
「김만중의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은 서포(西浦)김만중[金萬重, 1637∼1692]이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을 집필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작품이다. 이야기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설화나 일화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실제 역사적 사실에 바탕으로 둔 내용이 전개되고 있다.
조선숙종 때, 김만중은 29살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그러나 숙종이 궁녀 장씨에게 빠져 국사에 소홀하자, 그것을 직언했다가 평안도 선천으로 귀양살이를 떠나야 했다. 그리고 1년 만에 장씨가 아들을 낳자, 그 경사로 은덕을 베풀어 귀양살이에게 풀려나게 되었다. 이후 숙종은 장씨의 아들을 왕세자로 책봉하려 했다. 김만중은 목숨을 내어놓고 그 부당함을 역설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다시 남해바다 외진 섬으로 귀양살이를 떠나야 했다. 그 사이 장씨는 인현왕후를 내쫓고 자신이 왕비 자리를 차지했다. 멀리서 이 소식을 접한 김만중은 상소 대신 「사씨남정기」라는 소설을 집필했다. 숙종, 인현왕후, 장씨의 얽히고설킨 일들을 한 개인사 문제로 빗댄 소설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노모를 위해 「구운몽」이라는 소설을 집필했다. 노모의 외로움과 무료함을 소설로나마 잠시 달래주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김만중은 귀양살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56세의 일기로 세상을 뜨고 만다.
「김만중의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의 모티브는 ‘김만중의 유배생활과 소설 집필’이다. 김만중은 1687년(숙종 13)에 장숙의(張淑儀) 일가를 둘러싼 언사(言事)의 사건에 연루되어 선천으로 유배되었다. 1년이 지난 1688년(숙종 14) 11월에 배소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3개월 뒤인 1689년(숙종 15) 2월에 박진규(朴鎭圭), 이윤수(李允修)의 논핵(論刻)으로 남해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와 관련된 앙화(殃禍)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김만중은 1692년(숙종 18) 남해에서 56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이 작품은,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에 김만중이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을 집필했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자만 놓고 볼 때, 작품은 조선의 일부다처제가 빚었던 처첩 간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양반사대부 가문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축첩제도가 얼마나 커다란 불행과 사회적 악덕을 낳는가 하는 것을 보여 주려 했으며, 나아가 선은 승리하고 악은 망한다는 윤리 도덕적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