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멸망」

한자 百濟의 滅亡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길림성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설화
주요등장인물 의자왕|흥수|계백
모티프유형 의자왕의 실정과 백제의 멸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7년
관련 지명 충청남도 부여군
정의

황구연[조선족 민담 구연 예술가]이 ‘의자왕의 실정과 백제의 멸망’을 구연한 설화.

개설

「백제의 멸망」은 백제의 의자왕(義慈王, 597∼660년, 재위: 641∼660년)이 흥수(興首) 같은 충신을 내쫓고 간신들에 싸여 실정을 거듭하다 패망했다는 것을 설명하는 야사(野史) 형식의 인물 전설(人物傳說)이다. 의자왕이 충신들의 직언은 소홀히 여기는 반면 간신들의 감언이설은 받아들여 결국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패망했다는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박창묵과 황상박이 채록한 황구연[남, 1909~1987년, 경기도 양주군 출생, 1937년 길림성 연길현[현 용정시] 이주]의 구연 작품으로 『황구연 전집』(김재권, 연변인민출판사, 2007) 중 제3권 “력사 이야기” 편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의자왕 20년에 신라의 5만 군사가 백제의 궁성을 공략했다. 뿐만 아니라 당나라의 13만 대군이 전함을 이끌고 백마강 하류로 진격했다. 우왕좌왕하던 끝에, 의자왕은 자신이 내쫓은 흥수가 떠올랐다. 의자왕은 신하들에게 흥수의 의견을 받아오라고 명했다. 흥수는 ‘백마강과 탄현은 적의 공격을 막기에 가장 유리한 곳이니, 이곳에 군사를 머물게 하여 적과 맞서 싸우면 한 사람이 능히 백 사람을 당할 것이다’고 했다. 그러나 간신들은 의자왕에게 ‘흥수는 백제의 멸망을 바라는 자이기 때문에 그의 말을 믿으면 안 된다’고 했다. 의자왕은 반신반의했지만 간신들의 말에 현혹되어 백마강과 탄현을 내어주고 말았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계백(階伯, 607∼660년)은 백제의 운이 다한 것을 짐작했지만, 5천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에서 마지막까지 백제의 자존심을 지키다가 장렬히 전사했다.

모티프 분석

「백제의 멸망」의 모티브는 ‘의자왕의 실정과 백제의 멸망’이다. 우리는 의자왕을 주색잡기에 빠진 왕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의자왕하면 떠오르는 인물군(人物群)이 삼천궁녀이다. 그러나 의자왕은 나당 연합군에 맞서 결전을 하다가 소정방에게 매수된 백제 성주에 의해 어이 없이 붙잡혀 당으로 끌려갔다. 또한 당나라에서도 끊임없이 백제 부흥 운동을 주도했다. 삼천궁녀와 주색잡기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시각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여하튼 우리나라에서 전승되고 있는 설화나 한인 사회에서 전승되고 있는 설화나 ‘의자왕의 실정에 의해 백제가 멸망했다’라고 하는 모티브는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 『한국 구비문학 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
  • 『한국 민속 문학 사전: 설화편』(국립 민속 박물관, 2012)
  • 김재권, 『황구연 전집』(연변인민출판사, 2007)
  • 연변대학 조선 문학 연구소, 『황구연 민담집』(보고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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