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직당한 림제」

한자 罷職당한 林悌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설화
주요등장인물 임제|황진이
모티프유형 임제의 황진이 추모시 작성과 관직 박탈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7년
관련 지명 황해도 개성시
정의

황구연[조선족 민담 구연 예술가]이 ‘임제의 호방한 기질’을 구연한 설화.

개설

「파직당한 림제」는 임제(林悌, 1549∼1587년)가 평안도 관찰사로 부임하는 길에 황진이의 묘소에 들러 제를 지냈다는 이유로 파직당한 사연을 설명하는 일화(逸話) 형식의 인물 전설(人物傳說)이다. 전설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에 바탕을 두고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박창묵, 황상박이 채록한 황구연[남, 1909~1987년, 경기도 양주군 출생, 1937년 길림성 연길현[현 용정시] 이주]의 구연 작품으로 『황구연 전집』(김재권, 연변인민출판사, 2007) 중 제3권 “력사 이야기” 편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임제는 과거에 급제하여 예조정랑(禮曹正郞)의 벼슬을 지냈다. 그런데 당시는 동서(東西) 붕당정치가 이루어지던 때라, 임제는 그러한 정치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늘 비정상적인 행위를 일삼았다. 예컨대 임제는 말을 타고 거리를 나설 때마다 한쪽 발에는 짚신을, 다른 한쪽 발에는 가죽신을 신었다. 하인이 연유를 물으니, ‘이쪽 편의 사람들은 내가 짚신을 신었다고 볼 것이고, 저쪽 편의 사람들은 내가 가죽신을 신었다고 볼 것이니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붕당정치를 비꼰 것이었다. 그리고 임제가 평안도 관찰사로 부임하는 길에 닭 한 마리와 술 한 병을 들고 황진이의 묘소를 찾아 제를 올린 후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 듯 누어있는 듯 / 홍안을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는가 / 잔(盞)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라는 추모시를 썼다. 이에 조정에서는 임제를 당장에 파직시킨다.

모티프 분석

「파직당한 림제」의 모티브는 ‘임제의 황진이 추모시 작성과 관직 박탈’이다. 임제는 조선 중기의 인물로 문장과 시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관직에 들어선 후 동인과 서인이 다투는 것에 개탄하여 명산을 두루 유람하며 여생을 보냈다. 또한 조선이 중국의 속국과 같은 형국이 되어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죽은 뒤 곡을 하지 못하게 했다. 즉 임제는 당대의 정치적인 현실이나 이념적인 사고에 염증을 느낀 진보적인 인물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임제가 평안도 관찰사로 부임하는 길에 황진이의 무덤에 들러 추모시를 남겼다는 것은 관직을 박탈당할 것을 알면서도 위선에 싸여있는 현실 정치에 대해 반감을 표출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한국 구비문학 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
  • 『한국 민속 문학 사전: 설화편』(국립 민속 박물관, 2012)
  • 김재권, 『황구연 전집』(연변인민출판사, 2007)
  • 연변대학 조선 문학 연구소, 『황구연 민담집』(보고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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