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玉蟾灘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 |
|---|---|
| 주요등장인물 | 처녀|뱃사람들|두꺼비|지네 |
| 모티프유형 | 처녀의 인신공희와 두꺼비의 보은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9 |
황구연[조선족 민담 구연 예술가]이 ‘옥섬탄의 지명 유래’를 구연한 설화.
「옥섬탄」은 ‘옥섬탄(玉蟾灘: 옥 같은 두꺼비가 살던 여울)’의 지명 유래를 설명하는 지명 전설(地名傳說)이다. 평소 효녀와 잘 어우러졌던 두꺼비가 큰 지네에게 제물로 바쳐진 효녀의 생명을 구한다는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다.
옛날, 어느 바닷가 마을에 홀어미를 모시고 사는 처녀가 있었다. 처녀는 낮에는 남의 집에서 품을 팔았고, 밤에는 삯바느질을 해 홀어미를 봉양했다. 어느 날, 모녀의 집으로 두꺼비 한 마리가 들어와 눈만 꿈벅거렸다. 처녀는 두꺼비가 가여워 몇 톨의 밥알을 주었다. 이후로 두꺼비는 떠나지 않았다. 처녀는 파리며 모기며 지렁이를 잡아 먹이며 두꺼비를 보살폈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먼 바다를 나가는 선원들이 바닷가 오공주(蜈蚣洲)라는 섬의 한 폐가에 살고 있는 큰 지네에게 바칠 처녀를 천 냥에 사러 다녔다. 처녀는 선원들에게 ‘자신이 제물이 되겠노라’고 했다. 다만, 행선하는 날에 집으로 거짓 신랑과 함께 꽃가마를 보내어 달라고 했다. 시집가는 것으로 홀어미를 속일 참이었다. 처녀는 선원들에게 받은 돈으로 의원을 사 홀어미를 진료하고 갖은 약재로 병을 다스렸다. 그리고는 ‘부자 댁으로 시집을 가노라’고 했다. 행선하는 날, 처녀는 홀어미와 작별하고 꽃가마를 탔다. 그런데 두꺼비가 꽃가마의 길을 막아섰다. 처녀는 두꺼비에게 홀어미를 부탁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폐가에 도착해, 선원들은 간단히 제를 올리고 처녀를 폐가에 가두었다. 얼마 후 큰 지네가 나타가 처녀의 몸을 탐했다. 이때 두꺼비가 나타나 큰 지네와 싸움을 벌였다. 처녀가 정신을 차려보니, 큰 지네와 함께 두꺼비가 죽어 있었다. 이 사실이 퍼져, 나라에서는 처녀에게 효녀문을 하사했다. 그리고 두꺼비에게 정삼품의 벼슬을 하사했다. 이후 처녀가 살던 마을을 ‘옥 같은 두꺼비가 살던 여울’이라는 뜻에서 “옥섬탄(玉蟾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옥섬탄」의 모티브는 ‘처녀의 인신공희와 두꺼비의 보은’이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 광포하고 있는 “지네장터 설화” 또는 “오공장 설화”의 각편이라고 할 수 있다. 전편의 흐름은 “지네장터 설화” 또는 “오공장 설화”와 매우 유사하다. 다만 처녀가 홀어미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려 했다는 것을 알고 나라에서 열녀문(烈女門)을 하사했다는 것과 처녀에게 보은하기 위해 자신을 온전히 희생한 두꺼비에게 정삼품의 벼슬을 하사했다는 것이 다르다. ‘희생에는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는 일종의 등식관계를 설정함으로써 인민이 국가를 위해 희생 또는 봉사할 때 국가도 인민을 위해 보상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