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海東盛國의 大祚榮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 |
|---|---|
| 주요등장인물 | 대조영 |
| 모티프유형 | 대조영의 군사 훈련과 발해 건국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7년 |
| 관련 지명 | 요령성 창무 서쪽 산지 |
대조영은 대중상(大仲象: 乞乞仲象)의 아들로 북방에서 태어났다. 대조영은 어려서부터 영특했을 뿐만 아니라 체격이 건장했다. 또한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했다. 이러한 능력으로, 대조영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고구려의 무관으로 발탁되어 북방 변경을 사수했다. 그런데 고구려의 기세가 점점 기울더니, 결국 당나라에게 패하고 말았다. 대조영은 아버지와 함께 붙잡혀 영주(열하 일대)로 끌려갔다. 그러나 대조영은 그곳에서 고구려와 말갈의 젊은 무사들을 규합하여 비밀리에 군사 훈련을 했다. 이 즈음 696년에 영주 북부지역에서 거란족이 당나라에 반하는 폭동을 일으켰다. 이를 기회 삼아, 대조영은 그간 규합한 젊은 무사들과 함께 당나라 진압군을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고 백성들을 인솔하여 동북으로 진군했다. 그리고 천문령(현 요령성 창무 서쪽 산지의 고개)에 매복해 있다가 당나라 군사를 일망타진했다. 이 소식을 접한 고구려의 유민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더니 대조영을 왕으로 추대했다. 고구려가 망한 지 30년 만에 대조영은 고구려의 후신으로서 발해를 건국할 수 있었다. 인근 국가들은 발해를 ‘동방에서 융성하는 나라’라는 의미에서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