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花石亭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 |
|---|---|
| 주요등장인물 | 이이|선조 |
| 모티프유형 | 이이의 화석정 건립과 선조의 임진강 도강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7년 |
| 관련 지명 | 경기도 임진강변 |
「화석정」은 이이(李珥, 1537∼1584)가 왜란을 예견한 것은 물론 선조가 피신할 고려하여 ‘화석정(花石亭)’이라는 정자를 지어 선조가 임진강을 건널 때 길을 밝혔다는 것을 설명하는 유물 전설(遺物傳說)이다. 이이의 탁월한 식견이 전편에 잘 드러나고 있다.
조선선조 때, 율곡이이는 왜란을 예견하고 십만양병설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임진년에 왜적이 쳐들어 왔다. 선조는 급히 행장을 꾸려 일행들과 함께 도성을 떠났다. 선조가 임진강에 이르렀는데, 한밤중이기도 하거니와 물살이 세 배를 띄울 수 없었다. 이때 누군가 저쪽에 정자가 있다고 소리쳤다. 선조는 정자에 불을 붙여 강을 비추라 명했다. 선조는 그 빛을 따라 무사히 임진강을 건널 수 있었다. 이후 7년 만에 왜적이 모두 돌아갔다. 선조는 임진강을 건널 때를 회상하며 그때 그 정자가 아니었더라면 무사치 못했을 것이라고 여기고, 그 정가를 누가 지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한 신하가 그 정자는 ‘화석정’이라고 하며, 이이가 난을 미리 예상하고 임금의 무사 행차를 위해 지었노라고 했다. 그러면서 혹여나 불을 밝힐 수도 있을 것을 고려하여 정자 기둥에 기름을 흠뻑 묻혔노라고도 했다. 선조는 그제야 이이의 식견에 감복했다. 그리고 화석정을 원래대로 복원할 것을 명했다.
「화석정」의 모티브는 ‘이이의 화석정 건립과 선조의 임진강 도강’이다. 두루 아는 것처럼, 이이는 십만양병설을 주창했으나 선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이는 오히려 당쟁에 휘말려 낙향했다. 그리고 화석정을 짓고 여생을 즐겼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가 몽진함에 임진강에 다다라 앞이 보이지 않자 선조가 직접 화석정에 불을 질러 뱃길을 밝히라고 명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전승되고 있는 여느 각편에서는 이이가 화석정을 짓고 여생을 즐길 때 노비에게 항상 기름걸레로 화석정을 닦으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유서에도 어느 날에 화석정에 불을 지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이의 탁월한 식견을 부각시킴으로써 그가 주창한 십만양병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