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破鏡奴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 |
|---|---|
| 주요등장인물 | 파경노|이정승 댁 셋째 딸 |
| 모티프유형 | 파경노의 지혜와 장원급제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7 |
| 관련 지명 | 서울시 |
황구연[조선족 민담 구연 예술가]이 ‘어느 머슴과 정승 딸의 결혼’을 구연한 설화.
「파경노」는 ‘거울을 깨뜨린 죄로 노비가 되었다’는 뜻에서 “파경노(破鏡奴)”라고 불린 어느 머슴이 장원급제하여 정승 댁의 막내딸과 결혼하게 되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민담(民譚)이다.
옛날, 강원도 강릉에 한 과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외롭게 살았다. 아들이 15세 되던 어느 날, 노승이 시주를 청했다. 과부는 쌀독 바닥에서 쌀을 긁어 노승에게 시주했다. 그러자 노승이 ‘아들이 정승 딸에게 장가를 들지 않으면 스무 살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과부는 노승에게 비책을 다급히 물었다. 그러자 노승은 ‘정승의 딸을 얻자면 정승이 살고 있는 서울로 가야 한다’고 이르고는 사라졌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5년 안에 정승의 딸을 맞이하겠노라고 하고 서울로 향했다. 아들은 서울로 올라와 손거울 장사를 하며 정승 댁을 두루 돌아다녔다. 이윽고 이정승 댁에 세 명의 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는 딸들에게 손거울을 팔는 체 하다가 일부러 깨뜨렸다. 아들은 정승에게 머슴으로 일하며 거울 값을 갚겠다고 했다. 이에 사람들은 ‘거울을 깨뜨린 죄로 노비가 되었다’는 뜻에서 ‘파경노(破鏡奴)’라고 불렀다. 파경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이정승은 파경노의 성실함을 알고 계속 머물려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어느새 3년이 흘렀다. 그러는 사이에 파경노는 셋째 딸과 친해졌다. 함께 글을 읽기도 하고, 피리를 불기도 했다. 어느 날, 이정승 댁 사람들이 들구경을 나갔다. 이때 파경노가 몰래 따라가 백마의 몸에 얼룩 칠을 한 후 사모관대를 갖춰 입고 피리를 불었다. 그러자 모두 신선이 나타났다고 난리법석을 쳤다. 이정승은 신선(파경노)을 불러 딸아이의 배우자가 누가 될는지 여쭈었다. 그러자 신선(파경노)은 셋째 딸의 배필은 집안에 있다며 유유히 사라졌다. 이후 파경노는 글공부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이듬해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이정승은 ‘그때 신선(파경노)이 말한 사위가 바로 자네였다’며 파경노를 사위로 맞아들였다.
「파경노」의 모티브는 ‘파경노의 지혜와 장원급제’이다. 이 작품에서 파경노는 지혜로써 미천한 신분을 탈피하고 정승의 딸을 맞아들인다. 불가능한 일을 성취한 것인데, 이로써 몰락한 양반이라든가, 일반 평민들에게 일종의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