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여왕의 음란」

한자 眞聖女王의 淫亂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설화
주요등장인물 진성 여왕|위홍|왕거인|거타지
모티프유형 거타지를 유혹한 진성 여왕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7
관련 지명 경상북도 경주시
정의

황구연[조선족 민담 구연 예술가]이 ‘진성 여왕의 무분별한 욕정’을 구연한 설화.

개설

「진성여왕의 음란」은 즉위 후에 진성 여왕(眞聖女王, 865∼897, 재위: 887∼897년)이 궁궐에서 벌인 음란한 추태를 설명하는 야사(野史) 형식의 인물 전설(人物傳說)이다. 진성여왕이 제 유모의 남편인 위홍(魏弘)에 이어 소년들을 궁궐에 숨겨놓고 사통하다가, 궁사 거타지(居陀知)에 의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박창묵, 황상박이 채록한 황구연[남, 1909~1987년, 경기도 양주군 출생, 1937년 길림성 연길현[현 용정시] 이주]의 구연 작품으로 『황구 연전집』(김재권, 연변인민출판사, 2007) 중 제4권 “명인 이야기” 편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신라 제51대 진성여왕은 음란하기로 유명했다. 진성 여왕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유모의 남편인 위홍과 밤낮으로 사통했다. 이때 소량리에 있던 부동석(不動石)이 제 스스로 자리를 옮기는 일이 발생했다. 이를 두고 간신들은 부동석이 자리를 옮긴 것은 양이 음을 찾아간 것이니, 전성 여왕에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늘 가까이 두고 정을 통하라 일렀다. 이에 진성 여왕은 위홍에게 각간(角干)의 벼슬을 제수하고 궁궐에서 공공연히 정을 통했다. 얼마 후 진성 여왕은 위홍이 싫증나, 소년 3명을 후궁에 숨겨놓고 자신의 정욕을 채웠다. 위홍은 질투심에 소년들을 제거하려 했으나, 오히려 소년들에 의해 암살당했다. 그러자 민심은 흉흉해졌다. 진성여왕을 규탄하는 방들이 사방에 나붙었다.

간신들은 진성 여왕에게 제야에 묻혀 있는 대학자 왕거인(王巨仁)이 백성들을 부추겨 일어난 행태라고 거짓으로 고했다. 진성여왕은 왕거인을 잡아 옥에 가두었다. 그러자 뇌성벽력이 치며 폭우가 내렸다. 진성여왕이 일관(日官)에게 점을 쳐보라 하자, 일관은 ‘왕거인을 잡아가둔 데 대한 하늘의 분노’라고 고했다. 진성 여왕은 놀라 왕거인을 방면했다. 이후 진성 여왕은 ‘거타지’라는 청년 궁사를 궁궐로 불러들였다. 거타지가 당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천하일색인 ‘만년화’를 아내로 맞아들였다는 소식에 질투를 느낀 것이었다. 진성 여왕은 교태를 부리며 거타지를 유혹했다. 그러나 거타지는 끝내 동하지 않았다. 진성 여왕은 그제야 자신의 추한 욕정을 깨달을 수 있었다.

모티프 분석

「진성여왕의 음란」의 모티브는 ‘진성여왕의 거타지의 유혹’이다. 이 작품은 『삼국유사』「기이」편에 수록되어 있는 진성여왕과 관련한 기록, 즉 진성여왕이 즉위한 후 유모인 부호부인(鳧好夫人)의 남편 위홍(魏弘)과 사통했고, 이어 미소년들과도 사통했다는 내용을 수용하고 있다. 그런데 관련한 기록에서 거타지는 진성여왕의 막내 아들인 양패(良貝)가 당나의 사신으로 갈 때 수행했던 인물이며, 서해 바다에서 용왕의 부탁으로 늙은 여우를 쏘아죽이고 용왕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는 신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즉 진성여왕이 거타지를 유혹했고, 또 거타지가 유혹을 뿌리치자 진성여왕이 깨달았다는 것은 거타지의 신이성을 바탕으로 새로이 각색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한국 구비문학 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
  • 『한국 민속 문학 사전: 설화편』(국립 민속 박물관, 2012)
  • 김재권, 『황구연 전집』(연변인민출판사, 2007)
  • 연변대학 조선 문학 연구소, 『황구연 민담집』(보고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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