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황의 일화」

한자 李滉의 逸話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설화
주요등장인물 이황
모티프유형 이황의 인간 존중과 검소한 삶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7
관련 지명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정의

황구연[조선족 민담 구연 예술가]이 ‘이황의 인품’을 구연한 설화.

개설

「리황의 일화」는 이황의 사람 존중하는 마음 및 검소한 삶을 설명하는 일화(逸話) 형식의 인물 전설(人物傳說)이다. 이황이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다른 사람들을 존중했을 뿐만 아니라 평생 가마를 타지 않을 정도로 검소한 삶을 살았다는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박창묵과 황상박이 채록한 황구연[남, 1909~1987년, 경기도 양주군 출생, 1937년 길림성 연길현[현 용정시] 이주]의 구연 작품으로 『황구연 전집』(김재권, 연변인민출판사, 2007) 중 제3권 “역사 이야기” 편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어느 해, 이황[李滉, 1502~1571]이 머슴과 함께 밭을 갈고 씨를 뿌렸다. 그런데 다음 날 나와 보니, 마을 사람들이 밭을 가로질러 냇가로 가는 바람에 씨가 죽어 농사를 망칠 판이었다. 머슴은 가시나무를 가져와 밭에 둘러치려 했다. 그러자 이황은 그를 말리며 오히려 마을 사람들에게 길을 터주었다. 그리고 어느 해에는 가뭄이 심하게 들어 논과 밭이 모두 타들어갔다. 그러나 이황의 논은 물가 바로 곁에 있어 피해가 심하지 않았다. 이황은 논의 물을 터 다른 논으로 물길을 내어주었다. 이황은 34살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홍문관의 교리 벼슬을 지냈다. 하루는 좌의정이 이황의 집에 들렀다. 마침 끼니때라 이황의 아내가 밥상을 들였다. 그런데 보리밥과 나물반찬이 고작이었다. 좌의정은 이황이 얼마나 검소하게 사는지 알았다. 그리고 이황은 평생토록 가마를 타지 않고 홀로 말을 타고 다녔다.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수고스러워하는 것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티프 분석

「리황의 일화」의 모티브는 ‘이황의 인간 존중과 검소한 삶’이다. 이황은 서원(書院) 건립의 기초를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많은 제자를 양성했다. 79번이나 벼슬에서 사퇴했을 만큼 권력과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 2,000편 이상의 시를 남겼으며, 조선도학(朝鮮道學)의 기본 틀과 독자성을 정립했다. 특히 합리성을 존중하고 현실에 맞는 예법을 시행했다. 이렇게 이황은 바람직한 선비였으며, 청렴한 청백리였으며, 탁월한 문학가였으며, 위대한 사상가였으며, 특히 남다른 성품의 인격자였다. 이 작품을 통해서도, 이황의 인간애와 검소한 삶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 『한국 구비문학 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
  • 『한국 민속 문학 사전: 설화편』(국립 민속 박물관, 2012)
  • 김재권, 『황구연 전집』(연변인민출판사, 2007)
  • 연변대학 조선 문학 연구소, 『황구연 민담집』(보고사, 2007)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