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花郞徒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 |
|---|---|
| 주요등장인물 | 남모|준정|진흥왕 |
| 모티프유형 | 화랑도 선출 방식의 변모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7 |
| 관련 지명 | 경상북도 경주 |
황구연[조선족 민담 구연 예술가]이 ‘화랑의 선출 방식’을 구연한 야사.
「화랑도」는 신라진흥왕(眞興王, 526~576년, 재위: 540~576년) 때 화랑 선출의 변모 과정을 설명하는 일종의 야사(野史)이다.
신라진흥왕은 고구려가 내분으로 혼란한 틈을 타 한강 이북을 점령했다. 또 밖으로는 중국과 교유하며 중국 문화를 받아들였고, 안으로는 삼국통일의 기반이 될 인재로서 화랑을 양성했다. 진흥왕과 신하들은 화랑의 선출 방식을 놓고 고민하다가 남녀를 무리지어 놀게 하고 그 속에서 행하는 행동을 선출 기준으로 정했다. 이에 신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꼽히는 ‘남모(男毛)’와 ‘준정(浚貞)’을 중심으로 3백 여 명을 무리지어 놀게 했다. 뭇 사내들은 남모와 준정에게 학문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춤과 노래 솜씨 등을 뽐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남모와 준정이 한 사내를 두고 질투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준정이 남모를 자신의 집으로 꾀어 술을 마시게 한 후 남모가 취하자 강에 빠뜨려 죽였다. 얼마 후에 이 사실이 발각되어 준정은 처형을 당했다. 남모와 준정의 숱한 무리들도 해체되었다. 이때부터 여성 대신 남성을 뽑아 아름답게 꾸며 ‘화랑(花郞)’이라 칭하고, 새로운 집단을 결성하여 명산대천을 돌며 호연지기를 키우게 했다.
「화랑도」의 모티브는 ‘화랑도 선출 방식의 변모’이다. 이 작품은 설화라기보다, 신라시대 화랑의 선출 방식을 살필 수 있는 『삼국사기(三國史記)』「진흥왕 본기」의 내용을 바탕으로, 여성을 중심으로 화랑을 결성했다가 남모와 준정의 시기질투에 의한 살인이 발생하자 남성을 예쁘게 꾸며 화랑을 새로이 결성했다는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