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風流客 讓寧大君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 |
|---|---|
| 주요등장인물 | 양녕대군|세종|정향 |
| 모티프유형 | 양녕대군의 서경 유람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7년 |
| 관련 지명 | 평안남도 평양 |
황구연[조선족 민담 구연 예술가]이 ‘양녕대군(讓寧大君)과 명기(名妓) 정향(丁香)의 사랑’을 구연한 설화.
「풍류객 양녕대군」은 양녕대군[1394~1462]과 평양 명기 정향이 세종(世宗)의 은덕으로 사랑을 이루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인물 전설(人物傳說)이다. 세종이 서경(西京)으로 유람을 떠나는 양녕대군에게 금주(禁酒)와 금색(禁色)을 명했지만, 오히려 세종이 양녕대군을 위해 정향이라는 평양의 명기와 연을 맺게 해준다는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다.
양녕대군은 동생에게 왕위를 내어주고 명승지를 두루 돌며 풍류를 즐겼다. 양녕대군이 서경으로 유람을 떠날 때, 동생인 세종은 친히 마중하며 ‘이번 여행에는 술과 색을 금하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양녕대군은 동생의 말이지만 어명인지라, 말 한 필과 동자 한 명을 대동하고 조촐하게 길을 떠났다. 하지만 세종은 양녕대군의 기질을 잘 아는지라, 평양감사에게 ‘내가 명한 것을 비밀로 하고 재색을 겸비한 기녀를 형님에게 붙여주되, 형님이 떠나면 그 기녀를 한양으로 보내라’고 했다. 평양감사는 ‘장미꽃’으로 불리는 ‘정향’이라는 기생에게 양녕대군을 모실 것을 명했다. 정향은 소복 차림을 하고 양녕대군의 침소 근처를 배회했다. 양녕대군은 소복 차림의 여인이 천하일색임을 알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그녀를 꾀어 정을 통했다. 며칠간 사랑을 나눈 뒤 양녕대군은 정향에게 “그대 한번 이별하면 만일 길 없으리니 / 이 다음 어느 곳에서 다시 만나리 / 연지 곤지 고운 얼굴 누가 보리오 / 눈썹에 어린 수심을 거울은 알리라.”라는 시를 써주고 한양으로 돌아왔다. 세종은 연회를 베풀어 양녕대군을 맞이했다. 이때 한 기생이 나타나더니 양녕대군이 써준 시를 읊었다. 정향이었다. 양녕대군은 정향과 만남이 우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고 동생이자 임금인 세종에게 감사의 예를 올렸다. 이후 정향은 양녕대군의 첩이 되어 백년해로했다.
「픙류객 양녕대군」의 모티브는 ‘양녕대군의 서경 유람’이다. 두루 아는 것처럼, 양녕대군은 세종에게 왕위를 내어주고 평생 풍류를 즐기며 살았다. 이 작품에서 양녕대군의 풍류가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세종이 서경 유람을 떠나는 양녕대군에게 술과 색을 금하라 명한다. 그러면서도 양녕대군의 성정을 잘 알고 있는지라, 평양감사에게 명하여 정향이라는 기생으로 하여금 수청을 들도록 한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성군으로서 세종의 면모가 아니라, 형을 염려하고 아끼는 동생으로서 세종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