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高麗營子村[撫順市] |
|---|---|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 지역 | 요령성 무순시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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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구수 | 300여 호[2011년] |
| 개설 시기/일시 | 1930~1940년대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39년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40년대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49년 10월 |
| 지역명 | 요령성 무순시 |
요령성(遼寧省) 무순시(撫順市) 장당향(章黨鄕)에 있었던 조선족 마을.
먼 옛날 고구려 사람들이 이곳에서 살았다고 하여 ‘고려영자’라 불리게 되었다. 실제 철배산(鐵背山)에 계번성(界藩城)이라고도 부르는 철배산성(鐵背山城)이 있었다고 한다.
고려영자촌이 형성된 것은 1930~1940년대로 짐작된다. 당시 요령성 신빈현(新賓縣)에 살던 한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왔고, 1940년대에 한인이 60여 호가 모여 살았다고 한다. 한인들은 고려영자촌 동쪽의 이화락촌과 와자화락촌 남쪽 산 밑에 보를 쌓고 고려영자촌 앞으로 흐르는 혼하(渾河)의 물을 끌어다 농사를 지었다.
당시 그곳에는 개인 서당이 있었는데, 40여 세 된 훈장이 5~6명의 한인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쳤다고 한다. 1939년 고려영자촌에 6년제의 영반 학교(营盘學校)가 설립되었다.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이후 고려영자촌과 동살이호(東萨尔滸)에 조선족 학교가 들어섰다.
1957년 동살이호촌의 조선족들은 모두 이석채 사방대촌으로 이주해 갔다. 1958년 대화방 저수지가 건설되면서 마을이 수몰되어 촌민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해 갔다. 1960년부터 이주하지 않은 조선족 촌민들과 흑룡강성 안달현으로 이주하였던 한족들이 고려영자촌으로 되돌아오면서 마을 서쪽 언덕에 새로운 마을을 형성하였다.
전성기 때에는 고려영자촌에 600여 호가 살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조선족이 많았고 조선족 학교까지 있었다고 하지만, 2011년 기준, 300여 호의 주민 중 조선족은 한족과 결혼해서 살고 있는 박씨(60세) 노인 한 명뿐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