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大道村[撫順市] |
|---|---|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 지역 | 요령성 무순시 전전진 대도촌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행정촌 |
|---|---|
| 가구수 | 260세대[1950년대] |
| 인구[남/여] | 900여 명[1950년대]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29년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48년 10월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58년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1년 7월 18일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79년 7월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0년 10월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4년 6월 6일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6년 2월 15일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9년 10월 18일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3년 7월 22일 |
| 지역명 | 요령성 무순시 전전진 대도촌 |
요령성(遼寧省) 무순시(撫順市) 순성구(順城區) 전전진(前甸鎭)에 위치한 조선족 마을.
대도촌 지역에 1664년 승덕현이 설치되었고 소재지는 심양구에 두었다. 1902년에 승덕현 동부 지역이 분리되어 흥인현(興仁縣)이 설치되면서 이에 소속되었다. 1908년 흥인현은 무순현으로 개칭되었고, 소재지는 무순성으로 옮겨가 그 관할에 속했다. 1912년 중화민국이 들어선 뒤 봉천성이 설치되고 봉천성 무순현에 소속되었다.
1929년 동북 정무위원회가 설립되면서 봉천성 요령성으로 개칭하여 요령 무순현에 소속되었다. 1931년 ‘9·18 사변[일본의 침략]’으로 무순 지역이 일본에 의해 강점되었다. 1932년 요령성이 봉천성으로 개칭되면서 봉천성 무순현 관할지역에 소속되었다. 1937년 위 무순현 공서에 소속되었다. 1945년 11월, 안동성(安東省)무순현 민주 연합 정부에 소속되었다. 1946년 무순현과 심철무(沈鐵撫) 연합현에 소속되었다. 1948년 10월 안동성 무순현에 소속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면서 1949년 요동성 무순현에 소속되었고 토지 개혁이 실시되었다. 1952년 무순현에 속했던 것을 취소하고 농업 임업국에서 관리하였다. 1953년 농업 임업국이 폐지되면서 무순시 교구 판사처가 설립되었고 1954년 무서구에 소속되었다. 1956년 고급 농업 생산 합작사가 설립되면서 동려사에 귀속되어 대도 작업구라고 하였다.
1958년 중국에서 농촌 인민공사화 운동이 시작되면서 하북구 동북인민공사에 소속되었다. 1959년 하북구 인민위원회가 폐지되고 제2차 교구 판사처가 설립되면서 그에 소속되었다. 1961년 7월 18일 교구 판사처가 폐지되고 무순현제가 회복되면서 전전인민공사에 소속되었는데, 1978년 9월, 무순시 교구 사업위원회가 설립된 이후, 전전인민공사에 소속되었다. 1979년 7월, 중국 공산당 무순시 교구 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교구 사업위원회는 폐지되었다. 1980년 10월, 무순시 교구 위원회는 무순시 교구 인민 정부로 개칭되었다.
1983년 8월, 전전인민공사가 폐지되고 전전향 인민 정부와 향 경제 연합 관리 위원회가 설립되었다. 대도 조선족 생산대대와 대도 한족 생산대대는 각각 대도 조선족 촌민 관리 위원회, 대도 한족 촌민 관리 위원회로 개칭되었다. 1984년 6월 6일, 전전향 인민 정부는 전전조선족향으로 바뀌었다가 1986년 2월 15일에 전전조선족향은 다시 전전조선족진으로 바뀌었다. 1999년 10월 18일에 전전조선족진은 전전진으로 개칭하였다. 2003년 7월 22일, 대도 조선족 촌민 관리 위원회와대도 한족 촌민 관리 위원회가 합쳐져 대도촌 촌민 관리 위원회로 개칭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