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韓樂然 紀念館 |
|---|---|
| 분야 | 문화·교육/교육|문화·교육/문화·예술 |
| 유형 | 지명/시설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기념관 |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1년 |
| 최초 설립지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해란강과 육도하 합수목 |
한낙연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명칭이 유래되었다.
한낙연은 1898년 12월 8일, 중국길림성 용정촌 토성포의 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한광우이고 자는 낙연, 윤화라는 아명과 소공이라는 별명이 있다. 1914년에 소학교를 졸업한 후 신국과 세관에서 일하며 외국의 서적과 신문을 접하면서 서양 예술과 진보적인 사상을 수용하게 되었다.
1919년 조선의 3.1 운동에 동조하여 용정에서 3월 13일, 2만 여명이 참가한 반일시위를 주도하였다. 일본 경찰의 지명 수배를 받고 항일 운동을 위해 상해로 갔다가 1920년 상해 미술 전과 대학에 입학하였다.
중국 공산당의 기관지인 『향도』의 주필 채화삼의 인도로 1923년 중국 공산당에 가입하였다. 한낙연은 중국 공산당에 가입한 첫 한인이며 또한 동북에서 사업을 개시한 첫 공산 당원이기도 하다. 1923년 말 상해 미술 학교를 졸업한 후 동북에 파견되어 당 창건 사업에 동참하였다.
1931년 프랑스의 루브르 미술 학교에 입학하여 서양화를 전공하면서 노동 운동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였다. 귀국 후 공산 당원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다가 1940년 6월, 국민당 특무에게 비밀리에 체포되었다.
석방 된 후에는 키질 천불동에서 석굴 벽화를 연구하였다. 한낙연은 중국을 대표하는 벽화와 서방 문화를 결합시켜 예술 창작을 한 첫 중국화가로서 그림과 고고학을 융합시켜 고대 문명을 보호하는데 막대한 공헌을 하였다. 1947년 두번째로 키즐 천불동을 고찰하고 오다가 가욕관 상공에서 악천후를 만나 기련산에 추락하여 사망하였다.
2010년 9월, 용정시낙연 공원이 설립되었고 2011년 7월 30일에는 한낙연 타계 64 주기를 맞아 동상 제막식이 있었다. 2011년 4월-12월에는 중국 미술관에서 한낙연 특별 전시회가 있었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광복 60주년이었던 2005년 국가 보훈처로부터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며 그해 10월 덕수궁 미술관에서 한낙연 특별전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