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李石村[撫顺市] |
|---|---|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 지역 | 요령성 무순시 무순경제 개발구 이석조선족진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행정촌 |
|---|---|
| 면적 | 900여 무(경작지) |
| 가구수 | 753호 |
| 인구[남/여] | 2,030호 |
| 개설 시기/일시 | 1920년대 초기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37년경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50년대 초기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1년 |
| 현 소재지 | 요령성 무순시 무순경제 개발구 이석조선족진(북위 41°49'16.72"동경 123°43'32.51") |
요령성(遼寧省) 무순시(撫順市) 무순 경제 개발구 이석조선족진(李石朝鮮族鎭)에 있는 행정촌.
이석촌에는 753호 2,030명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이석촌은 원래 조선족과 한족 혼합촌이었으나, 인민공사 시절 단독 조선족 마을로 분리되었다. 산하에 6개 촌민 소조가 있으며 경작지는 1983년에 2,500여 무(畝)였지만, 2003년에는 1,700무로 줄었다. 현재는 900여 무가 남아 있다. 그나마 농사를 짓는 세대는 10여 호에 불과하다.
이석촌의 수전 농사는 1937년경 한인 박룡서, 김춘식 등이 이곳에 이주해 오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면적도 좁고 수확량도 적었다. 이후에 한인 수가 증가하면서 수전 면적도 점차 늘었으며, 1950년대 초기부터는 수전 면적이 대폭 확대되었다. 이곳 조선족 주민들은 원래 수전 농사를 위주로 해왔으나, 1970년대부터 촌영 기업을 꾸리기 시작했다.
이석촌의 문예 활동은 오랜 역사가 있다. 해방 초기부터 마을에는 박동훈 등 조선족 청년들이 조직한 악대가 활약했다. 1948년 조선의용군의 한 지대인 이홍광 지대에서 악기를 빌려갈 정도였다. 1961년 이후 청년들은 농민 문화실을 꾸리고 문화 지식 보급과 독보, 문예 활동 등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이후 1964년 조직한 문예 선전대는 자체적으로 관현 악대와 민족 무용 복장 등을 갖추고 작곡, 편곡, 연주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이석촌은 1920년대 초에 형성되었다. 1947년에 30여 호가 살았는데, 1950년대 이후 그 수가 부쩍 불어 1970년대는 400호에 2,000여 명의 인구를 가진 큰 마을을 성장했다. 1983년을 전후하여 이곳의 조선족 주민은 750호에 달했다.
이석촌에는 현재 공공기업 가운데 집체 소유 기업 3개에 서비스업을 위주의 크고 작은 개인 사업체 100개가 있다. 총생산액은 2억 7천만 위안에 달한다. 타지에 나가 장사나 사업하는 촌민이 30여 호이고, 한국에 진출한 노무자는 150여 명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