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보촌[심양시]

한자 紅旗堡村[瀋陽市]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요령성 심양시 신민시 호태진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행정촌
인구[남/여] 290명
개설 시기/일시 1910년
변천 시기/일시 1958년
변천 시기/일시 1967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5년 광복 전
행정촌 요령성 심양시 신민시 호태진[북위 41°49'03.61", 동경 123°05'55.21"]
정의

요령성 심양시 신민시(新民市) 호태진(胡台鎭)에 있는 한인[조선족] 마을.

개설

신민시는 심양시의 유일한 현급시이며, 제일 넓은 행정구역이지만, 인구가 적어 인구밀도가 매우 낮다. 해당 지역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시기는 청나라 건륭제 시기로, 신민툰(新民屯)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1913년에 신민현(新民县)이 설치되었다.

홍기보촌은 1910년 길용만(吉用万)이 처음 이주한 이후 1912년 여씨·심씨·최씨 등 3호가 일제의 탄압을 피해 이주해 왔다. 1915년에는 심양 서탑에 살던 이원창이 가족 등과 함께 이주해 오면서 수전농을 중심으로 한 한인 마을로 성장해 갔다.

명칭 유래

홍기보촌은 부근에 홍씨 가문의 땅과 그 선조들의 무덤이 있어 홍가총(洪家塚)이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형성 및 변천

1910년 길용만(吉用万)이 조선에서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였다. 1912년 조선에서 이들을 따라 또 3가구가 이 마을로 이사를 왔다. 1945년 광복 전까지 300호가 넘는 큰 조선족 마을로 거듭났다. 해방 후 마을의 조선족 호수는 계속 불어나 현재 호적에는 446호에 인구가 1,300명이다. 최근 10여 년 간 해외 노무에 나가 있는 촌민들이 급증하면서 마을에 남아 생활하는 촌민이 290여 명에 불과하다.

현황

홍기보촌에 1921년 조선 학교가 설립되었는데, 당시 학생 수는 20명이었다. 2년 뒤 1923년에는 학생 수가 50여 명으로 늘어나 두 개 반급을 운영하였다. 1928년에는 학생이 100여 명으로 증가하여 4개 반급으로 늘어났다. 1938년 6년제 우질학교로 인가를 받았고 1943년에는 학생 수가 400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일제 패망 후 많은 한인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학생 수는 40명으로 급감하였다. 그 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예전 학생 수를 회복하여 300여 명을 유지했다.

마을 입구에 1987년 신민현 인민 정부 지명 판공실이 화강암에 ‘홍기보촌(紅旗堡村)’라고 새긴 표지석을 세웠다.

참고문헌
  • 『요령신문』(http://www.lnsm.lm.cn, 2014.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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