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맹촌[심양시]

한자 聯盟村[瀋陽市]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요령성 심양시 소가둔구 성교향 연맹촌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행정촌
면적 7만 5천 ㎢
가구수 670가구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0년대 후반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3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5년
행정촌 요령성 심양시 소가둔구 성교향 연맹촌
정의

요령성 심양시 소가둔구(蘇家屯區)에 위치한 조선족 마을.

개설

연맹촌은 심양시 소가둔구 시가지에서 조금 벗어난 성교향에 위치한 한인[조선족] 마을이다. 일제 패망 이후 중국 각지 50여 개 촌에서 조선족들이 모여들어 소가둔 시가지에 산재해 살았다. 연맹촌은 520가구에 인구 1,549명, 경작지 2,570무(畝)를 가지고 있는데 요령성 내에서도 손꼽히는 부유한 조선족 마을이다.

명칭 유래

타지에서 유입된 조선족들이 연맹하여 만든 마을이라고 하여 '연맹촌(聯盟村)'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형성 및 변천

연맹촌은 일제가 패망한 이후 중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50여 개 촌의 한인들이 이곳에 몰려들면서 형성되었다. 한인[조선족]들은 조선족들은 1980년대 중국 정부의 개혁개방 정책이 본격화하기 전까지는 주로 논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부터 한국을 비롯한 해외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현재까지 한국, 일본, 미국, 러시아 옮겨 간 인원이 180명이나 되었다. 그곳에서 농사를 짓는 조선족은 20여 명에 불과하여 전 촌의 노동력은 3%밖에 안 된다.

1980년대부터 연맹촌은 제조업, 서비스업을 발전시켜 1980년대 후반까지 10여 개의 작은 집단 기업이 설립되었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기존의 집단 기업이 모두 민영 기업으로 전환하고 모든 채무를 청산함으로써 중국 전역에 걸쳐 가장 먼저 기업 소유권 제도 개혁을 마친 마을이 되었다.

연맹촌은 1993년부터 자체적 자금으로 부지 220무(畝)에 달하는 연맹 공업 단지를 조성하였고, 20여 개 기업이 입주하였다. 특히 생산액이 천만 위안을 넘는 대형 기업이 네 개나 된다. 촌민 위원회는 현재 연맹 실업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체 재산을 재증식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연맹촌 지도부는 1995년 제1기 아파트 공사를 시작으로 문화 주택 단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 문화 주택 단지를 ‘화원 신촌’으로 명명하고, 대규모의 외지인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5기 공사를 마쳤는데, 아파트 13동과 종합 건물까지 포함해 총 7만 5천 ㎢를 건설하여 670가구가 입주했다.

주택 단지 안에는 구락부와 당구장, 볼링장, 에어로빅실, 사우나, 세탁소 등과 2만여 권의 장서, 40여 종의 신문을 마련한 도서 열람실이 있다. 이밖에 문구장[게이트볼장]과 노천 문화 광장, 고급 테니스장, 노천 롤러스케이트장, 기숙제 유치원 등이 마련되었다. 연맹촌은 300무(畝)의 부지에 문화 주택 단지 건설 계획을 수립하고 2004년부터 2차 개발을 시작하였다. 아파트 단지 내에는 현대식 기숙제 유치원도 설립하였다.

연맹촌 부근에는 또 소가둔구 중심 조선족 소학교와 심양시 제2 조선족 중학교등의 교육 기관이 들어서 있어 교육 여건이 매우 좋다. 요즘도 도시에서 값싸고 좋은 주거지를 찾아 모여드는 외지인이 많다.

현황

연맹촌심양시만융촌, 길림의 아라디촌, 연변조양촌, 흑룡강폭포촌 등과 함께 녹색 문화 경제 사회를 건설하려 애쓰고 있다. 중국 정부는 완전 무공해 자연 농법을 도입하여 녹색 농업의 고부가 가치 농업을 창출하기 위한 투자를 해오고 있는데, 연맹촌 역시 생태 문화 경제 개발권의 도시를 만들 계획이다.

참고문헌
  • 중앙 인민 방송국 조선어부, 『중국 조선족 농촌 기행』(민족 출판부, 2008)
  • 김창호·유명희·진용선·전신재 편저, 『재중 강원인 생활사 조사 연구-중국 요령성』(강원도·강원 발전 연구원, 2009)
  • 「새 기원을 펼쳐가는 심양 한겨레(2)」( 중국 조선족 종합 뉴스, http://www.korean3040.com/bbs/board.php?bo_table=0301&wr_id=6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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