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농장

한자 渤海 農場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흑룡강성 영안시 동경성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농업 조직
설립자 안희제
설립 시기/일시 1933년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1년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2년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4년
최초 설립지 흑룡강성 영안시 동경성
정의

1933년 안희제(安熙濟)가 지금의 흑룡강성(黑龍江省) 영안시(寧安市) 동경성(東京城)에 세운 한인 농장.

설립 목적

평소 국외 독립운동 기지 개척을 구상하던 안희제는 1931년 가산을 정리하여 중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경상북도 봉화금정(金井) 광산 개발로 많은 돈을 벌었던 김태원(金台原)의 도움으로 발해의 고도(古都)인 영안현 동경성으로 가서 토지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1932년에는 목단강 상류의 일부를 석축으로 막아 농지에 수로를 연결하여 광활한 땅을 개간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발해 농장의 한인 이주민은 대부분 조선의 남부 지방 농민들이었다. 안희제는 빈농 300여 호를 이곳에 이주시키고 자신이 창안한 ‘자작 농창제(自作農創制)’를 시행했다. 자작 농창제란 이주 농민에게 무상으로 토지를 분배하고, 여기서 수확된 곡물 절반을 거두는 대신에 다른 지역의 농지를 개간하고 수로를 개설하도록 한 것이다. 5년 후에는 또 다른 지역의 농토를 개간하고 수로를 개설하게 했다. 이렇게 하여 농민들이 자립할 수 있게 하는 자작농 육성 제도였다. 그리고 이주 농민과 그 2세들에게 민족 정신과 자주 독립 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동경성에 발해 보통학교를 설립했다. 그는 이 학교의 교장이 되어 민족 교육 운동에 앞장섰다.

의의와 평가

발해 농장은 표면적으로는 농지 개간 사업을 하는 농장이었으나, 사실은 국외 독립운동 기지였다. 1934년 민족 종교인 대종교 총본사가 동경성으로 옮겨지자, 3세 교주 윤세복(尹世復)을 비롯한 간부들을 대동 청년단(大東靑年團)에 가입시켜 대종교 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참고문헌
  • 강대민, 「백산 안희제의 대동 청년단 운동」(『논문집』8-2, 경성 대학교, 1997)
  • 오미일, 「일제 시기 안희제의 기업 활동과 경제 운동」(『국학 연구』5, 2000)
  • 이동언, 『독립운동 자금의 젖줄, 안희제』(독립 기념관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소, 2010)
  • 조동걸, 『안희제; 백산 안희제의 생애와 민족 운동』(선인, 2013)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