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平安道 사람들이 일군 遼寧省 寬甸縣 下露河鄕 三道河村의 느릅 국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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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생활·민속/생활 |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 지역 | 요령성 단동시 관전만족자치현 하로하조선족향 삼도하촌 |
| 시대 | 현대/현대 |
| 전통음식 | 관전현 삼도하촌에서 계승해 가는 평안도지역의 전통음식인 느릅국수를 소개하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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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족 마을 | 요령성 단동시 관전만족자치현 하로하조선족향 삼도하촌 |
| 조선족 민속촌 | 요령성 단동시 관전만족자치현 하로하조선족향 삼도하촌 |
중국요령성, 길림성 일대의 평안도 출신 한인들이 즐겨 먹는 한국 전통 음식.
하로하향 삼도하촌은 마을 이름에 물이 가득하다. 로하(露河; 물로 적시다)와 삼도하(산의 곡지로부터 내려오는 물줄기 가운데 세 번째). 물로 그득한 마을의 이름에서 풍요로움까지 느껴진다. 마을을 나와 환인으로 향하는 산고개를 넘어 가다가 보면 비로소 마을 이름이 왜 ‘하로하’인지 알게 된다. 고개의 정상에 잠시 서면 마을 유역을 크게 휘돌아 흐르는 요하가 보인다. ‘로하’라는 지명은 마을 유역에 크게 휘돌아 흐르는 ‘요하’를 일컫는 것이며, 요하의 아래에 있기에 ‘하로하’라는 지명이 붙여진듯 하다. 그리고 휘돌아 흐르는 요하의 퇴적면을 따라 마을이 터를 잡고 있었다.
9월의 삼도하촌은 수확을 기다리는 벼들로 노랗게 빛났다. 물이 가득한 만큼 마을의 곡식도 풍요롭고 인심 또한 넉넉하여 푸근한 어머니 품 같은 느낌이 드는 마을이다.
얼마 전, 한국의 TV에 삼도하촌의 민속촌이 소개되었다. 민속촌 소개보다는 한인[조선족] 마을에서 감소해가는 한인[조선족]과 이에 대한 안타까움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나 는 조선족 민속촌이 자리하고 있는 이 지역에 그들의 전통과 문화가 많이 남아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고 방문하였다.
마을 어귀로 들어서자 장승과 솟대, 누렇게 익은 벼 등이 한국의 어느 농촌과도 같은 친근한 느낌이었고 작은 규모의 민속촌이 자리하고 있었다. 민속촌에는 단층으로 된 ‘조선족민속박물관’ 건물이 있었지만 문을 열지는 않은 상태였고, 장승과 물레방아, 한국식 음식점인 ‘고려미식원’, 숙박시설 등이 있었다. 특히 100년 이라는 세월을 간직한 초가집이 있었는데, 간도지역에 남아있는 흔치 않은 한국식 가옥으로 매우 가치 있는 건축물이다. 초가집 지붕 위와 처마 밑에 매달아 말리는 옥수수는 이 지역 사람들의 삶과 뗄 수 없는 옥수수를 상징하는 듯 보였다. 간도를 포함한 만주지역은 본래 논농사가 힘든 지역이다. 지금 이 지역의 논농사는 이주 한인들이 일구어낸 노력이요, 중국인들 입장에선 신비이다. 한번은 용정에서 출발하여 흑룡강유역까지 차를 타고 답사를 한 적이 있는데, 몇 시간을 달리고 달려도 옥수수밭 뿐이었다. 초가집 옆으로는 2년에 걸쳐 복원했다는 베틀이 있었고, 집 안에는 이 집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그대로 담긴 베개, 장롱, 촛대, 주방도구, 심지어 주판까지 남아있었다.
그런데 이 민속촌의 주인이 중국인[한족]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너털웃음이 났다. 중국인이 한인[조선족]들의 문화의 아름다움을 보고 상업적 목적을 위해 이 민속촌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인[조선족]은 자신의 마을에서 떠나고 있는데, 중국인[한족]이 한인[조선족]의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민속촌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씁쓸했고, 중국인이 한인들의 아이템을 이용하여 돈을 번다는 사실에 살짝 화도 났다. 민속촌을 실제로 운영하는 총경리 역시 한인[조선족]인 김근자씨(39세, 소학교 교사)였다. 그녀는 방과 후와 주말에 학교가 쉬는 날에는 민속촌을 관리한다고 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민속촌의 ‘고려미식원[한식당]’은 이곳에서 가장 매력적인 공간이다. 산자락을 흐르는 계곡 옆 평상에 앉아 먹는 토종닭백숙과 느릅나무국수는 또 하나의 풍경이 된다. 때마침 여름 날 바람 선선한 평상에 앉아 먹는 토종닭백숙과 느릅나무국수는 입으로 느끼는 맛보다 눈과 기분으로 느끼는 맛이 더 좋았다. 서울에서만 자라난 나는 이처럼 크고 질긴 닭을 먹어 본 적이 없어서 놀랍고 신기하기까지 했다. 닭이 질긴 이유는 마당에서 맘껏 놀고 자란 근육질 닭이라 그렇다는 이야기에 내가 그동안 먹어온 닭들은 참으로 영양가가 없었겠구나 싶었다. 오이무침은 엄마가 해주시던 아쌀한 향까지 비슷했으며, 다만 이 동네 고추는 피망만큼 큼지막하여 간혹 피망인줄 알고 방심하고 먹었다간 매운 맛에 큰 코 다치기 일쑤이다.
느릅국수는 처음 보는 국수이다. 그 이름도 처음 듣는다. 생김은 중국식 냉면과도 흡사했고, 우리네 잔치국수와도 비슷했다. 가느다란 소면에 맑은 육수와 오이, 고추, 파 등으로 고명을 얹은 국수였다. 아마도 면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김근자씨는 느릅국수를 내오며 특별한 한국식 전통 국수이며 몸에도 좋은 음식이라고 소개하였다. 예로부터 느릅나무껍질에는 찰기가 있어서 돌이나 기와를 붙이는 접착제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느릅나무 껍질을 물에 담가 두면 끈끈한 진이 많이 나오는데, 씨에도 끈적끈적한 점액질이 들어있어서 옥수수 가루와 느릅나무 뿌리를 말려 낸 가루를 섞어서 반죽을 하면 찰기가 생기기 때문에 이 반죽으로 국수를 만든다는 것이다.
처음 듣는 이름처럼 우리 일행은 느릅국수를 처음 맛보았다. 중국식 냉면보다 자극적이지 않고 잔치국수보다 깊지 않은 육수 탓이었을까.. 약간은 부족한 듯한 밍밍한 국물이 뭐 그리 특별할 것 없었다. 단동이 집이라는 한족 기사분도 처음 맛보는 국수라고 했다. 느릅국수의 참 맛은 육수보다는 면에 있었다. 찰기가 없는 옥수수 가루를 이용한 면임에도 씹을수록 찰지고 구수한 느낌이 들었다. 중국에서 맛보기 힘든 담백한 음식이다.
언젠가 강원도 정선에서 맛보았던 콧등치기국수와 올챙이국수가 생각났다. 척박한 강원도 산골에서 메밀과 옥수수는 그들의 주식이었다. 메밀을 이용하여 만든 콧등치기국수. 바쁜 일터에서 국수 한 사발 후루룩 먹다보면 면발이 콧등을 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한다. 우스운 이름에 담긴 해학은 씁쓸한 웃음을 짓게 한다. 옥수수가루를 치대여 만든 국수가 올챙이국수이다. 메밀의 찰기도 강하지는 않다. 그래도 메밀을 이용한 콧등치기국수는 약간의 찰기로 투박한 면발이 먹는 이의 콧등도 치지만, 찰기가 없는 옥수수 가루를 이용하여 만든 올챙이국수는 면이라고 하기에는 안스럽기까지 하다. 곡물의 전분으로 면을 만들려면 글루텐이라는 성분이 있어야 점성이 생기면서 탄력있는 면발이 만들어진다. 밀에는 이 성분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물을 넣고 반죽해서 치대기만 해도 가느다란 면을 뽑을 수 있지만 다른 곡물은 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점성이 없는 전분가루는 반죽을 압출기에 넣어 면발을 만든 뒤 바로 끓는 물에 넣어 전분을 호화시킴으로써 면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올챙이국수는 압출기마저 사용하지 않고 구멍난 틀에 반죽을 흘려 끓는 물에서 그냥 호화만시킨 것이다. 묽은 반죽이 뜨거운 물에 떨어지면서 모양새가 마치 올챙이와 같아서 올챙이국수라는 이름을 얻었다.
느릅껍질에 들어 있는 점액질은 글루텐이 없는 옥수수에 점성을 제공해 준다. 밀가루 국수의 글루텐과 같은 쫄깃한 조직감을 주지는 못하지만 국수발이 힘없이 풀어지는 것을 막아준다. 느릅가루와 옥수수가루는 척박한 환경과 가난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식재료였으나 두 가지 전분이 만나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해줌으로써 환경에 적응한 창의적인 음식을 만들어냈다. 느릅국수는 옥수수가루 한 바가지에 느릅나무 속껍데기 한 줌의 비율로 섞어 물에 반죽하여 물이 끓는 솥에 걸쳐놓은 국수틀인 ‘분틀’에 눌러 면발을 뽑아 만든다.
느릅나무는 한자어로는 분유(枌楡) 또는 가유(家楡)라고 한다. 학명은 [Ulmus davidiana var. japonica NAKAI]이다. 나무의 높이는 15m, 지름은 70㎝에 이른다. 원줄기가 곧게 자라서 많은 가지를 내어 둥근 나무의 형태를 이룬다. 긴 타원형의 잎은 어긋난 형태이며 길이는 4∼8㎝이며, 끝은 뾰족하고 톱니가 있으며 밑부분은 일그러진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잎 표면은 거칠거나 평활하고 뒷면 엽맥 위에 털이 있다. 잎자루는 길이 3∼7㎜로 털이 있고 꽃은 3월에 피며, 열매는 도란형(倒卵形: 거꾸로 세운 계란형) 또는 타원형이다. 휘어지는 성질이 뛰어나고 잘 갈라지지 않아 우산·양산자루나 휨의자 등을 만드는 데 이용된다. 내피(內皮)는 물에 우려내어 소나무 내피가루와 섞어서 먹기도 한다. 특히, 떡느릅나무의 어린잎은 밀가루나 콩가루에 버무려 떡을 만들어 먹을 수 있으며, 열매는 옛날에 사용했던 얇은 동전과 닮아 유전(楡錢) 또는 유협전(楡莢錢)이라고 부른다. 번식은 봄에 익은 종자를 채취하여 곧바로 심어야 묘목을 얻을 수 있다.
특히 느릅나무는 접착력이 뛰어난데, 『아언각비(雅言覺非)』에는 "느릅나무로 아교를 만드는데, 그 아교를 기와나 돌에 바르면 아주 튼튼해진다."는 기록이 있고, 『증류본초(證類本草)』에는 "느릅나무의 흰 껍질에 물을 좀 섞어 질게 풀처럼 짓찧어 기와와 돌에 붙이는데 사용하면 아주 효력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뿐만 아니라 느릅나무는 이른 봄이나 가을에 뿌리껍질을 벗겨서 약재로 널리 사용해왔는데, 뿌리껍질은 소염과 항균작용을 해주는 성분이 있어 종창이나 종기를 낫게 하는 약재로 쓰이고, 대장과 방광 근육의 운동을 강화하여 대변과 소변을 잘 나가게 하고 약한 기침을 멎게 해준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뿌리껍질을 달여서 위염,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대장궤양, 측농증, 비염들의 치료에 쓰이며 열매와 잔가지는 위암 치료에 쓰기도 한다. 이밖에도 부작용이 없는 천연수면제로 봄철에 돋아나는 어린 순을 끓여 먹으면 불면증이 사라지며, 뿌리의 점액질을 피부에 바르거나 먹으면 피부에 탄력을 주고 매끄러워 지는 등 여러 가지 효능을 가진 나무이다.
느릅나무는 추위에 잘 견디고 내음성도 강하며, 습기를 좋아하는 식물로서 토양 속의 신선한 물기가 있는 곳에서 생장이 왕성하다. 100m∼1200m 높이의 계곡이나 하천가에 잘 자라는 나무로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다. 예로부터 북한에서는 귀한 손님이 오거나 명절 등에는 느릅나무를 재료로 한 느릅국수를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느릅나무의 생장 환경은 북한과 중국 동북부 지역에 걸맞아 우리에게는 느릅나무를 활용한 음식이 생소하겠지만, 북쪽 지역에서는 전통적인 음식이다. 물이 풍부하며 기온이 낮고, 고도가 높은 산지 지형을 가진 북한과 두만강·압록강 넘어 북쪽 만주지역에서 느릅나무는 잘 자란다. 느릅나무는 북한 사람들과 북한에서 만주지역으로 이주한 한인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나무이자 약초이며 식재료이다. 이 느릅나무 껍질은 송눈평원, 삼강평원 등 만주 벌판에서 자라는 옥수수와 결합되어 느릅국수로 탄생된 것이다.
청조는 1644년(順治元年) 북경으로 입관(入關, 심양의 정권을 북경으로 천이함 것)한 이후 유조변(柳條邊)을 설치하였다. 유조변은 성경(현재의 심양) 지역에 설치되기 시작한 변장으로, 한인의 유입으로부터 청조의 발상지를 보호하고 유조변 내외의 경제적 이익을 황실과 만주족이 독점하기 위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성경과 몽고의 경계를 나누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유조변은 참호를 파고 그 흙을 참호의 옆에 쌓아 제방을 만들고 그 위에 유조변(버드나무 또는 느릅나무) 울타리를 세운 것이다. 제방 위에는 5척 간격으로 길이 1m 정도의 버드나무 가지를 세 개씩 꽂고 가지와 가지에 줄을 치거나 다른 가지로 엮어서 서로 연결했다. 만주지역에 설치된 이 엄청난 버드나무 울타리의 길이는 1300여 ㎞에 이르며 전체적으로 ‘人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심양에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청소릉(淸昭陵, 북릉)이 있다. 청소릉은 청의 태종황태극(皇太極, 홍타이지)의 무덤이다. 명나라를 위협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 홍타이지의 영웅성은 엄청난 규모의 무덤에서 느낄 수 있다. 무덤은 반원 형태의 성으로 되어 있는데 옥성(玉城)이라 명명하며, 그 위에 옥정(玉頂)이라는 큰 봉분을 만들었다. 특히 옥정 위에는 커다란 느릅나무 한 그루를 심은 것이 매우 특징적이다.
만주지역에서 느릅나무는 주변의 흔한 나무이며 동시에 만주족을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만주지역에서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우리 한인들에게도 이 나무는 삶이라는 공간에서 친숙한 나무가 된 것이다.
얼마 전 방송된 “KBS한국인의밥상-백년의 유혹, 평양냉면”(2014년 7월 17일 방송) 편에서는 평창 황토구들마을의 제면기술에 대해 소개하였다. 평양냉면의 비밀은 육수에 있는데, 육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또한 제면이라는 것이다. 강원도 평창 황토구들마을에서는 오래전 마을에 살았던 평안도 사람에게 전수받은 방법으로 옥수수와 느릅나무 뿌리의 껍질을 이용해서 국수를 내려 먹는다고 한다. 이 지역의 ‘느릅재기 국수’를 통해 평안도의 전통 느릅국수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쌀은 주식이다. 하지만 산지가 많고 남쪽보다 온도가 낮은 북한 지역이나 강원도 지역에서 쌀밥을 먹기란 일반인들에게 쉽지가 않았다. 쌀보다는 메밀과 옥수수, 감자 등이 그들의 주식일수 밖에 없다. 평안도 사람들이 피란을 나와 강원도 산간지역에 전파한 느릅재기 국수는 너무나도 획기적인 먹거리였다. 느릅재기는 느릅나무의 뿌리를 일컫는 것으로, 느릅재기의 끈적한 가루는 올챙이국수를 먹던 강원도 사람들에게 신기한 가루였다. 말린 느릅재기를 옥수수와 함께 갈아서 면으로 만들면 면이 질기고 끊어지지 않는다. 이는 옥수수가루 뿐 아니라 메밀가루와도 섞어 면으로 만들면 찰기가 있어 훌륭한 면으로 탄생한다.
예로부터 북한에서는 귀한 손님이 오거나 명절 등에는 느릅나무를 재료로 한 느릅국수를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탈북귀순자들 자활공동체로 시작한 대관령식품은 지난 2000년 12월 29일 느릅나무의 뿌리껍질을 재료로 한 느릅차(특허출원) 개발을 시작하였다. 현재는 북한의 명물이라고 할 수 있는 느릅냉면과 느릅찐빵을 공급하고 있는데, 북한산 참느릅나무와 계란을 섞어 만든 국수를 생산하고 있다.
느릅국수 한 그릇에는 가난과 추위, 이산과 향수라는 고명도 함께 담아져 있다. 척박하고 가난한 북한지역 사람들의 전통음식이었고, 두만강압록강 건너 만주로 이주한 한인들이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옥수수 가루와 섞어 만들어 먹었던 주식이었다. 평안도와 함경도 출신의 한인들은 다행히도 만주지역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느릅나무와 옥수수 덕분에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랠 수 있었을 것이다. 삶의 공간과 터전이 달라졌지만, 삼삼오오 모여 고향의 음식 느릅국수를 만들고 먹으며 고향을 느끼지 않았을까? 우리에게는 생소한 건강식품이지만, 그 전통을 이어가려는 탈북자주민들과 한인들의 노력이 참으로 고맙게 느껴진다. 평안도식 느릅재기 국수를 전파한 피란민에게 감사하다.
오늘은 느릅국수의 의미를 생각해보며 가족들과 한 그릇 먹어보는 것은 어떨까. 바쁘다는 핑계로 의미와 전통에 점점 소홀해져가는 우리에게 느릅국수는 배부름과 함께 진한 여운을 남긴다. 느릅재기의 끈끈함과 느릅국수의 찰기가 넘치는 사람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