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례상

한자 醮禮床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혼인 의례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30년대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0년대
정의

중국 동북3성으로 이주한 한인들이 혼례를 치를 때 차려놓는 상.

개설

초례상은 신랑 신부가 혼례식을 올릴 때 차려놓은 상으로 ‘혼례상’ 또는 ‘교배상’, ‘대례상’이라고도 한다. 음식으로는 떡과 과일만을 차리고 청색, 홍색 양초를 꽂은 촛대 한 쌍과 소나무 가지와 대나무 가지를 꽂은 꽃병 한 쌍, 쌀 두 그릇, 청색과 홍색 보자기에 싼 닭 한 쌍을 남북으로 나누어 놓는다. 청실과 홍실은 신랑 신부를 의미하고, 초례상 위에 놓는 소나무와 대나무는 송죽 같은 굳은 절개를 뜻한다. 쌀은 장수와 식복을, 밤과 대추는 장수와 다남(多男)을 각각 의미한다.

연원 및 변천

1930년대까지는 교배례가 행해지기도 했다. 전안례가 끝나면 마당 한가운데에 높은 상을 놓고 소나무 가지를 꽂은 화병과 대나무를 꽂은 화병을 하나씩 놓고 신랑은 동쪽에 신부는 서쪽에 마주 선다.

1940년대까지 혼인은 전통적으로 친영(親迎) 방식이었으며 의혼(議婚), 대례(大禮), 후례(後禮)의 세 단계로 이루어졌다. 친영 방식이란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혼례를 치르고 신부를 데리고 집으로 오는 것을 말한다. 즉 혼례를 신부집에서 치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중국 동북3성 한인 사회에서는 친영을 하되 당일 돌아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교배례와 합근례는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드문 일이 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거의 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늘날 이러한 절차는 완전히 사라졌다. 대례는 전안례를 하고, 이후 큰상을 받으며 이튿날 구고례를 하는 것만이 남아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전에는 홀기가 있어서 부르는 대로 하면 되었는데, 지금은 없어지고 신식이 되었다. 집 마당을 혼례식장으로 삼고 사회자에 의해서 주례를 모신 자리에서 혼례식이 진행된다. 신부가 신랑집에 도착하면 대문을 들어설 때 문턱에서 짚을 태운다. 그리고 문턱을 넘을 때 설탕물이나 감주를 신부에게 먹인다. 이는 입을 무겁게 하라고 하는 것이다.

대문 안마당에 마련한 혼례상에는 원래 대나무와 소나무 가지를 꺾어서 청실과 홍실로 감아 꽃병에 꽂아 양쪽에 마주하여 놓는다. 그러나 신락촌(新樂村)에는 대나무가 없어서 소나무라도 꺾어와 대신한다. 죽은 대나무는 사용할 수 없다. 이렇게 혼례상을 마련하여 식을 올리는 것은 이전의 풍속이 남은 것이다.

참고문헌
  • 『중국 요령성 한인 동포의 생활문화』(국립 민속 박물관, 1997)
  • 『중국 길림성 한인 동포의 생활문화』(국립 민속 박물관, 1996)
  • 『중국 흑룡강성 한인 동포의 생활문화』(국립 민속 박물관, 1998)
  • 박승권·김광영, 『조선 민족의 민속』(민족 출판사, 2010)
  • 심영숙, 『조선 민속 지식』(요령민족출판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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