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林公堂祭 |
|---|---|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 유형 | 의례/제 |
| 지역 | 길림성 요령성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민간신앙 |
|---|---|
| 의례시기/일시 | 음력 2월 초/ 음력 4월 초 |
| 신당/신체 | 임공당/ 신주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6년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5년 |
| 의례 장소 | 요령성 환인현 와니전자촌 |
| 의례 장소 | 요령성 환인현 우가촌 |
중국 연변 지역의 한인 마을에서 조선 중기의 명장인 임경업을 모시고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동제.
마을 사람들이 매년 택일하여 임경업 장군을 모신 사당인 ‘임공당’에서 마을의 평안과 개인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의이다. 사당이 없는 경우에는 마을의 높은 산모퉁이에 있는 큰 바위 밑을 신성한 공간으로 삼아서 임경업 장군을 모시기도 했다. 1966년 문화 대혁명 때 파괴되었다가 최근에 여러 지역에서 임공당이 다시 조직되고 있다.
이들이 임경업 장군을 신으로 모시는 이유는 임경업 장군이 억울하게 모함을 받아서 죽은 영웅으로, 그의 죽음이 억울한 자의 한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청과 명의 세력 관계 속에서 어려운 외교를 수행해야 하는 조선 조정의 밀명을 띄고 평안도압록강 하구의 섬에 진을 치고 의주에 걸친 국방을 담당하다가 그를 시기한 김자점의 무고로 억울하게 처형을 당하였기 때문에 임경업 장군이 충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평안도 출신 한인들 사이에서 임공을 받드는 신앙이 상대적으로 유행하는 것이다. 그의 원혼은 무속 신앙에서 중요한 신 중의 하나이고, 특히 평안도에서 널리 숭배된다.
① 분향
② 헌관 3인이 절을 올린다.
③ 초헌: 술 한 잔씩 올리고 세 번 절한다.
④ 축 읽기: 이때 모두 무릎을 꿇고 앉는다.
⑤ 아헌: 아헌관이 둘째 잔을 올리고 세 번 절한다.
⑥ 종헌: 종헌관이 술을 올리고 세 번 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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維歲次某年某月某日 ○○○(祭主) 敢昭告于
土地之神 林公 今以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한다.) 一年四時節萬家百姓
五道山神
太平無事萬事如意 神其保佑 全無後艱 謹以淸酌 脯醯祗薦尙饗
와니전자촌에서는 마을의 안쪽 산모퉁이 절벽 아래 벼랑바위 밑에 임공당을 짓고 임경업 장군을 모셨다. 매년 음력 4월 초일에는 마을에서 집집마다 추렴을 하여 돼지를 잡아 올리고, 고기를 집집마다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남은 것을 가마솥에 넣고 한 데 끓여 밥을 말아 먹는다. 이것을 ‘원반죽’이라 하였다. 모두가 둘러앉아 함께 먹는 죽이라는 뜻이다. 임공당은 마을의 가장 안쪽 산모퉁이 절벽 밑에 있었으나 문화 대혁명 때 부수어진 후 현재까지 복구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그곳을 지나가면서 절을 하기도 하고 단오나 명절에 찾아가 빌기도 한다.
1956년 생산을 ‘집체화’하면서 임공당 제사가 없어졌다. 마을 사람 모두가 생산대의 일원으로서 조직체의 계획에 따라 활동을 해야 하고 여러 민족이 함께 집체생활을 하는데 각각 자기 민족의 종교를 고집하면 분란이 일어난다는 논리에 따라 폐지하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마을 사람들은 임공이 조선인이고 평안도와 특별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평안도 출신은 꼭 모셔야 한다고 믿고 있다.
② 우가촌(于家村)
우가촌에서는 마을에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고, 또 한국으로 원양 어선 선원이 되어 떠나거나 다른 일을 하러 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면서 안전을 기원할 필요가 생겼다. 이러한 이유로 누군가 임공당 건립을 제안하였고 이를 받아들여 우가촌에서는 1995년 임공당을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집집마다 추렴을 하여 벽돌로 작은 사당을 짓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제사를 올렸다. 그러나 이런 일이 중국 정부의 정신문명 건설 운동에 위배되는 행위로 처벌받을까 두려워 비밀로 하였다. 한족 마을에서는 한족의 민간 신앙이 회복되고 있었지만 한인[조선족]들은 한족과는 달리 이런 일이 있으면 더욱 혹독한 비판을 받는다는 것을 그동안 문화 대혁명을 비롯한 몇 번의 역사적 과정을 통하여 겪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임공당의 위치와 임공당제를 지낸다는 것도 한인들 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비밀로 하였다. 특히 중국 공안국과 민족사무위원회에서 민족 색채가 농후한 민간 신앙 활동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임공당은 우가촌 사람들이 관전(寛甸)에서 살 때부터 전해오던 민간 신앙이었다. 관전에서도 큰 바위 밑에 작은 집을 지어서 임공을 모셨다. 제사는 매년 음력 2월 초정일(初丁日)에 지내는데 모든 가정에서 성의껏 추렴을 하여 그 돈으로 돼지를 잡아 올리고 술 세 잔을 바친다. 마을이 큰 산이나 바위가 없는 평지라서 멀리 논들의 한 곳에 벽돌로 작은 집을 짓고 신주를 모셨다. 임경업 장군을 중앙에 모시고 양쪽에 토지신과 산신을 모셨다. 1997년에는 닭을 세 마리 올리고 집집마다 채소 반찬을 장만해서 하루를 즐겼다. 집집마다 호주 한 명은 반드시 참가하고 그 외에도 마을 사람이면 남녀노소 구분 없이 누구든지 참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