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야 | 생활·민속/민속 |
|---|---|
| 유형 | 놀이/놀이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놀이 |
|---|---|
| 재료 | 쌀되 |
| 계절 | 겨울 |
동북3성 지역에서 ‘쌀되’를 가지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쌀·기름·마른 고사리·채소·돈 등을 거두면서 노는 한인 부녀자들의 놀이.
‘되놀이’는 한인 부녀자들이 만주(滿州)라는 특수한 환경 및 가부장적인 사회의 억압과 구속 하에서 생활하며 쌓인 울분과 한을 해소하기 위해서 스스로 만들어낸 놀이다. 놀이의 구성에서부터 가사의 내용과 노랫말의 사투리까지 모두 한인 부녀자들이 지은 것으로, 당시 시집살이에서 받은 멸시와 천대, 억울함과 고된 노동, 궁핍한 삶에서 오는 설움 등을 가식 없이 노래와 춤으로 풀어내고 있다.
되놀이는 나이에 따라 새각시패, 중년패, 노년패로 나누어 음력 12월 초부터 20일 사이에 날짜를 정해 사흘씩 모여서 놀이를 한다. 연말이 되면 부녀자들이 설을 준비하느라 바쁘게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옛날 농촌에서는 쌀의 무게를 가늠할 때 저울보다는 말이나 되를 사용하였다. 처음에는 되를 통나무로 만들었는데 나중에는 널판으로 네모나게 짜서 만들었다. 농가에서도 쌀독 안에 작은 바가지를 놓아두고 그 바가지를 기준으로 쌀을 일정하게 담아서 밥을 짓는데 그 바가지를 ‘쌀되박’이라고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가정에서 쌀이나 되의 관리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고 대개 시어머니에게만 있었다. 아침에 시어머니가 쌀 함박에 쌀을 담아 주면 많든 적든 그대로 밥을 지어야 했고, 다른 사람은 절대로 간섭할 수도 불평을 해서도 안 되었다. 집집마다 가난한 살림이라 시어머니가 주는 쌀은 늘 빡빡해서 식구들에게 밥을 주고 나면 며느리는 누룽지를 먹는 것이 일상이었다. 예를 들어, 갓 시집온 며느리가 쌀되박을 물려받으려면 적어도 30여 년의 세월이 흘러야 가능했던 것이다.
‘되놀이’가 시작되면 각 패의 대장과 부대장은 주머니와 쌀되를 가지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쌀·기름·마른 고사리·채소·돈 등을 거두게 된다.
이들이 집에 오면 며느리는, “아매, 되놀이를 할 쌀 거둘라 왔으꾸마!” 하고, 시어머니는, “에구, 내 지금 바쁨매, 똥돌이 에미 푼푼히 퍼주오!”라고 하면서 슬며시 자리를 피해 집에서 나가 버린다.
처음으로 쥐여보는 쌀되박에 신이 난 며느리는 되가 넘치게 쌀을 담아서 주머니에 넣어준다. 이렇게 되를 들고 다니면서 쌀을 거두며 노는 놀이라고 해서 이 도구의 이름을 따 부녀자들은 ‘되놀이’라고 하였다.
되놀이는 놀이의 구성과 규칙이 매우 엄격한 것이 특징이다.
① 전체 마을의 되놀이 총지휘는 중년의 부녀 대장이 겸임한다.
② 되놀이는 오직 기혼의 부녀자들만 참가할 수 있고 처녀와 아이들은 참석할 수 없다.
③ 놀이는 3패로 나누어 새각시패, 중년패, 노년패의 순서로 진행한다.
④ 노년패의 음식 준비는 반드시 중년패들이 도와주어야 한다.
⑤ 놀이에서 있었던 모든 언행은 절대로 밖에 나가서 누설하지 않는다. 만약 누설한 자는 책임 추궁을 당하며 이후부터는 여성들의 행사에 참여할 자격을 일체 상실한다.
⑥ 각 패에서는 놀이가 끝나면 조직을 재정돈하고 이듬해 놀이에 대해 1차적인 계획을 세운다.
되놀이는 연령에 따라 새각시패, 중년패, 노년패로 나뉜다. 이는 연령에 따라 부녀자들의 시집살이 상황이나 가정에서의 지위가 다르고, 나이로 인한 세대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새각시패들은 모두 갓 시집을 왔거나 시집살이 기간이 짧기 때문에 시집에서나 놀이에서도 조심스럽고 또 생활 경험이 많지 않아 놀이에서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노년패들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기에 생활력이 떨어지고 자신감이 사라져서 “다 건져먹은 김칫독이요”, “서산에 지는 해요” 라고 하면서 열정과 생기가 없으며 웃음이나 익살보다는 한평생 쪼들린 생활로 눈물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노는 분위기도 무겁고 침울하다. 중년패들의 놀이는 활력이 넘친다. 왕성한 기력으로 앞장서서 수레를 끌 정도로 기력이 왕성한 때라 고생이면 고생, 슬프면 슬픔, 기쁘면 기쁨 등을 터놓고 표현하며 기회를 잃을세라 마음껏 놀이를 즐긴다. 이 때문에 지나치게 얌전하고 방관적인 새각시패들의 놀이와 회고적인 노년패들의 놀이와는 달리 중년패들의 놀이는 정열적이고 활력이 넘친다.
* 놀이에서 부르던 새각시패들의 ‘고향 생각’ 노래 가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언니야 언니야 고향에 잘 있느냐
이 동생은 북간도(北間島)에서 별고 없이 지낸다오
뒷동산의 배나무 뜨락가의 박우물이
언제나 내 눈앞에 삼삼히 떠 오르오
내 언니야 이 동생은 그리워서 고향 생각
상봉의 그날까지 몸 건강하려무나
북간도 찬바람 이 몸을 후려치면
언니생각 엄마 생각 눈물 젖어 바라보오
산이 높아 못가나 물이 깊어 못 가는가
새들도 지종종 구름 저편 날아가오
해가 지고 달이 뜨면 못 잊어 그리워서
한가슴 부여안고 고향 생각 불 지피오”
새각시패 놀이는 감정 표현이 단조롭고 담백하면서도 시집살이 생활에서 그리워지는 친부모 형제들에 대한 생각을 꾸밈없이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 다음은 노년패들이 부르던 ‘인생타령’ 노래가사이다.
“아매 아매 우리 아매 내말 들어봅소
꽃가마 타고 어저께 시집온 것 같은데
저기 북망산에서 날보고 오라 손짓 하꾸마
애고고 우리 성님 이런 줄 알았더면
거미줄로 목 매 당겨도 시집은 안 왔을 걸
시집살이 개살이 배꽃 같던 내 얼굴
쪼들쪼들 할미꽃이 다 되었으꾸마
아매 아매 우리 아매 들어나봅소
산천초목 푸르싱싱 젊어만 가는데
인간초목 쪼록쪼록 늙어만 가꾸마
새끼 백발은 쓸데 있어도 인간 백발 폐물이꾸마
외로운 저승길 동갭(동갑)이 우리 같이 가깁소
일곱 매끼 착착 묶어 칠성판 질끈 걸머지고
눈물 젖은 통곡 소리 끌려가는 저승길
저승길이 길 같으면 오며가며 보련마는
저승 문이 문 같으면 열고 닫고 봅지비
상살이 고달파도 저승보다 나은걸
개똥에 구을러도 죽지 말고 살아야
고진감래 해달 뜰 때 웃음꽃을 피웁지비”
새각시와 노년패들의 놀이가 끝나면 3-40대 중년패들의 되놀이가 시작된다.
음식을 마련할 때부터 치마폭에 불이 날 정도로 신이 나 뛰어다니면서 대장의 역할 분담에 따라 두부 앗는 패, 방아 찧는 패, 고기 사러 장에 가는 패로 나눈다. 손발이 쉴 새 없지만 육담(肉談)과 악의 없는 욕지거리로 입은 더욱 바쁘다. 음식이 마련되면 저마다 대장이 골고루 몫을 나눈 음식을 치마폭에 감싸가지고 시아버님, 시어머님께 가서 내놓으며, “그사이에 애들이랑, 짐승 개를 거두느라고 수고를 하겠으꾸마!”라고 인사를 올리는데 시부모가, “양, 집 걱정은 하지 마오. 새 며느리도 있지. 날래(어서) 가보우!” 라고 하면 걸음에 불이 날 정도로 달려 놀이터로 정한 집으로 간다. 아무리 고추처럼 매운 시어머니라고 해도 며느리가 ‘되놀이’에 참가한다고 하면 반드시 허락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후일 온 동네의 비난을 받게 된다.
푸짐한 음식을 마주하고 허리띠를 풀어 헤치고 마음껏 먹고 마시면서 진행자의 ‘되놀이’라는 선포도 없이 마음 가는 대로, 흥이 나는 대로 누구라 할 것 없이 젓가락으로 밥상을 두드리면서 노래를 시작하면 곧바로 본격적인 놀이가 시작된다.
흥이 오르기 시작하면 가마 뚜껑을 두드려대기도 하고 병 안에 놋 젓가락이나 숟가락을 꽂고 절렁대기도 하는데, 그들은 이런 독특한 ‘타악기’의 절주와 화음에 맞추어 여러 가지 민요를 부르며 막춤판을 벌인다. 그렇게 한참 땀을 빼고 나면 주저앉아 술을 돌리는 한편 저마다 자신의 재주를 부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몇 사람이 차례로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다가 점차 독창이 중창이 되고 중창이 합창이 되며, 독무(獨舞)는 집체무(集體舞)로 번지면서 들끓는다. 어떤 사람들은 가마 밑 검댕이로 콧수염을 그리고 옷 단추를 거꾸로 건 후 바지도 엉덩이가 드러나도록 내려 입고 코맹맹이 소리로 노래하면서 ‘병신춤’을 추기도 한다.
선창: 우리 오마님(어머님) 우리 아반님(아버님) 각시 서방 때
합창: 양(그래) 양(그래) 서방 때
선창: 시오마님 귀밀눈 피해서
합창: 양 양 피해서
선창: 시아반님 덮개눈 피해서
합창: 양 양 피해서
선창: 짚벼개를 베고서 망석이불 덮고서
합창: 그렇지 덮고서
선창: 곰 같은 아반님 오마님 우에 올라서
합창: 그렇지 올라서
선창: 쿵덕쿵 쿵덕쿵 땀방아를 찧는데
합창: 그렇지 찧는데
선창: 심술돼지 시애끼(시동생을 이르는 말) 담뱃불 던지니
합창: 그렇지 던지니
선창: 방아찧다 깜짝 놀라 그만 폴싹 했지
합창: 그렇지 폴싹 했지
선창: 애고고 그래서 눈치병 얻었지
합창: 깨갱깨갱 쌍통맹통 꼬부랑통
위 노래에 맞추어 곱사등춤, 절름발이춤, 앉은뱅이춤, 목비뚤이춤 등 병신춤을 추다가 고조에 이르면 몸빼 속에 병을 넣어 삐죽이 내밀고 되는 대로 돌아가며 요분질하는 흉내를 낸다. 그 모양에 모두 배를 끌어안고 구르면서 눈물이 나도록 웃는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고 마음의 끈을 풀어헤쳐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부끄럼도 두려움도 근심 걱정도 다 버리고 저마다 저고리 깃을 풀어헤치거나 웃통을 훌쩍 벗어버리고 가슴을 노출시키고는 춤을 춘다.
“분통같던 이내 젖통 늘어져서 소불통이라
새끼 밥통인줄 알았더니 그런 것도 아니더라
수염 난 큰 애기 밤이 되면 더 보챈다
이 젖통 두었다 무엇 하나 흔들 때 흔들어라
쫄깃쫄깃 이 내 조개 나그네 반찬 좋을시구
고얘(고양이)굴에서 시에미도 며느리도 잘도 한다
먹이지도 못하고 입히지도 못하면서
이 엉치(엉덩이) 두었다 무엇 하나 흔들 때 흔들어라
뱁새 같은 시누이 눈 퉁방울진 시애끼(시동생) 눈
시아반님의 덮개눈 시오만님의 독사눈
그 눈이 무서워 한번 크게 살방아 못 찧는다
그 엉치 두었다 무엇 하나 흔들 때 흔들어라”
당시 부녀자들은 엷은 종잇장으로 된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동생 그리고 콩나물 시루처럼 빼곡히 누운 자식들 속에서 부부 생활을 하였기에 언제나 조심스러움과 두려움, 성욕과의 교차 속에서 만족과 쾌감을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 그런 억눌린 정서를 놀이로 표현함으로써 오랫동안 쌓였던 울화를 해소하려 했던 것이다.
어느덧 새벽닭이 울고, 맥도 풀리고 배도 출출하여 아궁이에 파묻었던 감자를 파내어 그릇에 담아오면 움에서 배추 김치를 내어다 통째로 쭉쭉 찢어 먹기 시작한다.
이때는 시집살이에서 받는 부녀자들의 억울함과 불평을 하소연하는 시간이다. 못되게 구는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실컷 욕을 하노라면, “묵은 나무 등걸을 시원하게 도끼로 잘 패댄다.”라고 하면서 모두 응원을 해준다. 이때 부르는 노래가사는 다음과 같다.
˂시집살이 가난타령˃
“며늘 아기 깃을 달고 봉선화 섶을 달고
의포 단장 차려입고 시집을랑 왔건만
큰가마 열어보니 암거미 줄 서리고
쌀독을 열어보니 수거미 줄 서렸네
우리 엄마 나설 적에 죽순나물 먹었지
마디마디 육천마디 마디마디 설움이요
마디마디 팔자마디 마디마디 눈물이요”
다음으로 ˂배고픈 설움˃, ˂고생살이˃, ˂시누이 구박˃, ˂나그네 트집˃, ˂친정귀가 홍타령˃ 등을 차례대로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