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패촌 학살 사건

한자 馬牌村 虐殺 事件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 월청진 마패촌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학살 사건
관련인물/단체 일본 조선군 제19사단 75연대
발생|시작 시기/일시 1920년 10월 27일
종결 시기/일시 1920년 10월 27일
발생|시작 장소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 월청향 마패촌
정의

1920년 10월 27일 일본 조선군 제19사단 75연대가 마패촌(馬牌村)에서 조선인 10여 명을 학살한 사건.

개설

마패촌도문시(圖們市) 남쪽 두만강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함경북도 수구포(水口浦)와 마주보고 있다. 당시 마패촌은 월랑사(月郞社)에 소속되어 있었다.

1920년 10월 27일 일본 조선군 제19사단 75연대는 마패촌에 들어와 조강식(曺强植), 조대겸(曺大兼), 조춘현(曺春鉉), 양흥록, 김사극 등 10여 명을 학살하였다.

역사적 배경

1920년 6월 북간도의 봉오동(鳳梧洞)에서 패배한 일제의 조선군(朝鮮軍)은 서북간도 지역에 있는 독립군들을 소멸시키기 위해 ‘간도 지방 불령 선인 초토 계획(間島地方不逞鮮人剿討計劃)’을 세웠다. 일제는 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만주의 마적단을 매수하여 1920년 10월 2일 혼춘현(琿春縣)의 일본 영사관을 공격토록 하였다.

일제는 영사관을 습격한 마적단을 두고 한국 독립군·중국군·러시아인이 혼합되어 있는 단체라고 주장하였다. 중국군이 있었다고 주장한 것은 간도 지역이 중국 땅이기 때문이었고, 러시아인을 주장한 것은 러시아가 간섭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한국 독립군을 주장한 것은 그들의 침략 목적이 한국 독립군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침략의 구실을 만든 일제는 혼춘 일본 영사관 습격이 있었던 그날 즉시 조선군 제 병력을 간도 지방으로 침입시켰다. 먼저 남쪽에서는 조선군 제19사단과 조선군 제20사단 78연대 소속의 3대대, 헌병대 및 경관대의 연합 부대를, 동쪽에서는 이전부터 시베리아에 주둔해 있던 포조 파견군(浦潮派遣軍) 제14사단 및 포조 파견군 제11사단 토문자 지대(土門子支隊), 포조 파견군 제13사단 우입 지대(羽入支隊)를 침입시켰다. 북쪽에서는 북만주에 파견돼있던 안서 지대(安西支隊)로 그 구성은 3개 보병 중대 및 4개의 기관총대, 1개 기병 소대였다. 마지막으로 서쪽으로는 1919년 4월 도독부(都督府)가 폐지되고 사령부가 설치되어 주둔하게 된 관동군 제19연대의 1개 대대 및 기병 제20연대가 침입하였다.

결과

1920년 10월 27일 일본 조선군 제19사단 75연대는 마패촌에 들어와 조강식, 조대겸, 조춘현, 양흥록, 김사극 등 10여 명을 학살하였다.

참고문헌
  • 중국 조선 민족 발자취 총서 편집 위원회, 『중국 조선 민족 발자취 총서(1)』민족 출판사, 1999
  •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소, 『한국 독립운동사 사전』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소, 2004
관련항목
이전 TOP